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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안 하면 못 나가는 방에 갇혀버렸다!

경아

“하리야, 하리야!”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목소리다. 아침 단잠을 깨우는 엄마나 아빠의 목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 익숙한 느낌이 든다. 천천히 눈을 뜨자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희미한 얼굴이 나타났다.

“하리야, 괜찮아?”

이 얼굴과 목소리의 주인공이 같은 반 친구인 리온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리는 상체를 일으켜 바로 앉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있는 것이라곤 밖으로 나가는 문 하나가 다인. 텅 빈 방이었다. 태어나서 이런 방은 본 적도 없다.

 

“여긴 어디야? 왜 너랑 내가 여기에 있어?”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귀신의 짓이 아닐까 싶어.”

“하긴, 그렇겠지. 일단 빨리 여길 나가자.”

이런 기분 나쁜 방에 오래 있고 싶지 않아 문 앞으로 달려가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어라?”

그런데 아무리 잡아 당겨도 열리지 않았다.

“이거 왜 이래?”

“잠긴 거 같아.”

“괜찮아. 이 까짓것!”

지금껏 몸을 던져 잠긴 문을 연 경험만 수 십 번, 수 백 번이다. 열 발 자국 정도 뒤로 물러선 후, ‘으아아아아!’ 하는 기합소리를 내며 문을 향해 달려갔다. 곧이어 ‘쾅!’ 하고 어마어마한 굉음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뭐야? 안 열렸어?”

하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밀어보고, 두드려 봐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문이 아닌 커다란 벽이나 돌 같았다.

“리온아, 네 힘을 사용해 봐.”

“나도 네가 깨어나기 전에 써봤는데 소용이 없었어. 웬만한 힘으론 뚫을 수 없는 단단한 결계가 쳐있는 모양이야.”

“그럼 이젠 우리 어떡해?”

“그러게 말- 어?”

“왜 그래?”

“하리야, 저기 좀 봐.”

리온이 문 위에 붙어있는 작은 종이를 가리켰다. 자세히 보니 종이에 뭔가가 적혀있었다.

“고백 안 하면 못 나가는 방?”

“뭐?!?!”

아무 생각 없이 종이에 적힌 것을 읽다가, 방이 떠나가라 비명을 내질렀다.

“뭐 이딴 방이 다 있어? 지금 사람 놀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진정해 하리야. 그래도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잖아.”

“그렇긴 하지만….”

 

고백이라니. 그런 낯간지럽고 민망한 것을 어떻게 해! 생각만으로도 몸서리가 처지는 하리와 달리, 리온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난 너한테 고백 해 본 적 있잖아. 그때 했던 걸 다시 하면 돼.”

그때라면. 하리의 머릿속에 과거의 한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괜찮지 않아. 널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자꾸 아파. 내가 널 좋아하나봐. 사실 하리 널 처음 봤을 땐 임무만 생각했어. 그런데 퇴마사조차 꺼리는 악귀들을 구원하려 애쓰는 네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흔들렸어. 그걸 숨기려고 장난처럼 다가갔었고 때론 진지하게 용기도 내봤지만…. 그래. 하리 네 마음속엔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거 나도 잘 알고 있어. 괜찮아. 대답을 바란 건 아니야. 기다릴게.’

그 때 처음으로 리온 앞에서 얼굴을 붉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나 직설적이고 정열적인 고백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 보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또 그때와 비슷한 말들을 들어야 한다니.

“하리야, 내 마음은 그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어.”

자신을 향한 리온의 시선이 느껴지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때는 너무 갑작스러워서 무의식적으로 눈을 마주쳤지만, 고백을 받을 것이라고 인지한 상황에서 눈을 마주치는 건 무리였다.

“여전히 널 좋아해 하리야. 그러니까 언제든지 기다릴게.”

짧지만 애틋함이 묻어난, 숨 막히는 고백이었다. 하리는 여전히 리온과 눈을 마주치지 못 한 채 문으로 향했다.

 

“이, 이제 열렸겠지? 빨리 나가자!”

 

빨리 여길 벗어나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머리를 식히고 싶었다. 가볍게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어라?”

“왜 그래?”

“아직도 안 열리는데?”

“뭐?!”

 

분명 리온이 고백을 했는데 여전히 문을 열 수가 없었다. 하리는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다가, 축구공을 차듯 문을 퍽퍽 차댔다.

 

“야!!! 너 지금 우리랑 장난하냐?! 왜 안 열어주는 건데!!!”

“잠깐. 저기 뭐가 더 쓰여 있는데?”

 

고백 안 하면 못 나가는 방. 그 옆에 회색의 작은 글씨가 덧붙여있었다.

“여자가 남자한테…. 고백 안 하면 못 나가는 방?!”

그 말을 듣고 하리의 온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한참동안 벙 쪄서 아무 말도 못 하다가, 반 쯤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물었다.

“여자가 남자한테 라면, 내가 너한테 고백해야 하는 거야?”

“아…, 아마도.”

고백을 듣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해야 한다. 왜 자꾸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는 건지. 이젠 다 귀찮고, 한시라도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다.

“알았어. 하면 될 거 아니야!”

“정말 괜찮겠어?”

“뭐 어때? 어차피 진심도 아닌데.”

눈에 보이지 않는 화살이 리온의 가슴 정중앙에 꽂혔다. 서글퍼서 살짝 울고 싶어졌다.

“후~!”

길게 심호흡을 내쉬고 리온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외쳤다.

 

“나 널 좋아해!”

 

성공했다. 이제 나갈 수 있어! 홀가분해서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괜히 시간만 버렸네. 빨리 가자.”

“어? 응, 그래!”

 

아무렇지 않은 하리와 달리, 리온은 얼굴이 토마토처럼 새빨개졌지만. 진심이 아닌 고백에도 이렇게 두근거리다니, 만약 진짜로 고백 받으면 기절할지도 모르겠다.

 

“자, 이제 탈출!”

 

문고리를 잡아당기며, 가까스로 찾아낸 자유를 만끽-

 

“…뭐야?”

 

할 줄 알았는데. 안 열린다. 여전히 방에서 나갈 수 없다.

 

“으아아아악!!!! 고백 했잖아!!! 이번엔 왜 또 못 나가는 건데?!”

“설마-”

 

리온은 다시 한 번 종이에 적힌 글씨를 확인하였다. 역시나. ‘남자가 여자한테’ 와 ‘고백 안 하면 못 나가는 방’ 사이에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남자가 여자한테 진심으로 고백하지 않으면 못 나가는 방?”

 

이 방에서 나가려면 단순한 고백이 아닌 ‘진심이 담긴’ 고백을 해야 한다. 하리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진심으로 고백하라니…. 그런 걸 어떻게 해.”

 

처음에는 어이없고 짜증났는데 이제는 절망스러웠다. 리온은 하리의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일단 조금 쉴까?”

두 사람이 벽에 기대 앉아 아무 말 없이 침묵만 지킨 지 벌써 1시간 째. 둘 다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몰라 입을 꾹 다문 채 서로 먼저 말을 꺼내길 기다리기만 해서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더욱 절망스러웠다. 어쩌면 여기서 평생 못 나갈지도 몰라. 그런 불안감에 휩싸여 하리의 몸이 덜덜 떨렸다.

 

“여기.”

리온이 재킷을 벗어 하리의 무릎 위에 덮어주었다.

“춥지?”

“아니, 그건 아닌데….”

“그래도 덮고 있어.”

“…응.”

또 다시 정적이 흘렀다. 이러다 어색함에 먹혀버릴 것 같았다. 리온은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띠우고 읊조리듯 말하였다.

“미안해.”

“네가 뭐가 미안해? 네 잘못도 아닌데.”

“네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 못돼서.”

“뭐?”

“내가 네가 좋아할 만큼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 해서 미안해.”

배시시 웃으며 말하는 리온과 달리 하리의 반응은 싸늘했다. 곧 이어 따끔한 손바닥이 리온의 등을 강타하였다.

 

“아야!”

“너 바보야? 넌 이미 충분히 좋은 아이잖아!”

“하리야….”

“솔직히 말하면 나도 처음엔 네가 별로 마음에 안 들었어. 너 전학 온 날, 내가 어떻게 이름을 아냐고 물어봤는데 무시했잖아.”

 

 

‘구하리, 안녕?’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아?’

‘나 첫날이라 교과서가 없는데 우리 같이 봐도 될까?’

“게다가 피구시간에는 내 공을 받아내고, 비겁하게 공격까지 했지.”

 

‘구하리, 진짜 세네?’

‘이럴 수가! 내 공을 받아 내다니!’

 

 

“그런데 알고 보니 아이기스의 요원이었고, 대뜸 날 지켜준다고 해서 얼마나 황당했는지 알아?”

‘이제부턴 내가 널 지켜줄게. 아이기스에서 제일 어리지만 실력은 쓸 만 해!’

“그래도 넌 항상 우리들을 지켜줬잖아. 내가 벨라한테 당할 뻔 했을 때, 네가 제일 먼저 달려와서 구해줬고-”

‘휴~ 아슬아슬했다.’

“흑마법사 때문에 내가 흑화해서 아이들이 위험했을 때, 온 힘을 다 해 아이들을 지켜내기도 했잖아.”

‘미안해 얘들아! 이 모든 게 나 때문이야. 내가 속아서 강림이를….’

“네가 없었다면 탈출한 자간이 온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내가 지금 여기 있지도 못 했겠지.”

‘안 돼! 저대로 세상 밖으로 나가게 둬서는-’

“네가 없었으면 아마 지금처럼 행복하지 않았을 거야. 그래서 다른 애들 모두 널 좋아하는 거고. 나도 마찬가지야. 널 만난 건 큰 행운이라고 생각 해!”

“하리야….”

비겁하다. 자긴 날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더욱 더 좋아하게 만들다니. 리온은 분했다. 그리고 행복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하리라서, 하리의 행운이 될 수 있어서, 하리의 진심을 들어서. 하리의 ‘좋아함’과 자신의 ‘좋아함’은 다르겠지만 상관없다.

리온은 하리의 모든 것이 좋다. 갈색 머리카락, 귀신의 과거를 보는 신비로운 눈, 언제나 당당하고 밝은 성격, 어떤 상처도 보듬어주는 다정함과 따뜻함,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의 미소까지.

그때 ‘달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절대 안 열릴 것 같았던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뭐야? 왜 열린 거지? 나 고백 같은 거 안 했는데!”

“사랑 고백이 아니라 그냥 고백이어도 상관없었나 봐.”

“뭐야? 그런 거였어?”

그런 건 줄 알았다면 후딱 해치우고 나갔을 텐데. 고민하고 걱정한 시간이 아까웠다. 하리는 벌떡 일어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구로 향했다.

“빨리 가자. 애들이 걱정하고 있을 거야.”

“하리야, 잠깐만.”

“응?”

아무 생각 없이 리온을 바라보았다.

그때도 그랬다. 전혀 예상치 못 한 순간, 뜬금없이 튀어나왔다.

“나, 네가 정말 좋아, 아니. 사랑해.”

그리고 지금도.

“너….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사랑해, 라는 말을 해준 건 또래 남자애들 중에 내가 처음이려나?”

“야!”

“빨리 가자. 애들이 걱정하고 있겠다!”

 

리온은 하리를 지나쳐 유유히 문 밖으로 사라졌다. 하리는 리온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목소리를 높였다.

 

“너 잡히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하여튼 참 곤란한 행운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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