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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장

"하리야! 하리야!"

 

"정신 좀 차려봐, 하리야!"

 

 

친구들의 울먹이는 목소리. 그것을 들으며, 하리가 힘없이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온몸을 엄습하는 추위에 순간 하리의 몸이 굳었다. 하리가 눈을 뜨자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친구들이 더욱 놀란 얼굴을 했다.

 

 

"하리야!"

 

"읍, 콜록······."

 

"괜찮아, 하리야?"

 

"다행이다······."

 

 

하리가 울컥 기침하며 바닷물을 토해내자 가은이 얼른 그녀를 부축해주었다. 죽는 줄 알았잖아! 하고 외친 현우가 엉엉 울며 하리에게 와락 안겼다. 그 따뜻한 온기에, 피식 미소지은 하리가 한 손으로 현우의 등을 토닥였다. 올린 손에 가장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걸 보아하니,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강림이 그쪽 손을 잡고 있던 모양이었다. 반면 물에 담근 것처럼 차갑기 그지없는 오른손에는······

 

 

찰박.

 

 

팔에 얼굴을 묻고 반쯤 엎드린 채, 하리의 오른손을 잡고 있던 인어가 있었다.

 

 

다행이야.

 

 

인어가 입모양으로 작게 뻐끔거리며 웃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어느새 싸늘하게 식은 가은이 인어를 향해 말했다. 강림도 마찬가지였다. 칼을 뽑으면 하리가 또다시 말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저 행동만 취하고 있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정말 자신을 없애버릴 기세의 강림을 보자, 인어가 시선을 슬쩍 회피하고선 호수 한가운데로 유유히 헤엄쳤다. 이번에는 인어도 뭐라 반박할 여지가 없었는지, 강림의 시선을 슬슬 피하며 강림이 오지 못할 호수의 가운데에서만 빙글빙글 돌고 있을 뿐이었다. 한편 가은과 현우가 너무 세게 껴안는 바람에 오히려 숨을 쉬기 힘들어진 하리가 겨우 친구들을 밀어내고 앉으며, 의식을 잃기 전 상황을 더듬었다. 그러니까, 인어가 말하길······

 

 

"······리온아?"

 

빙글.

 

 

맞구나.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인어의 이름을 불러본 하리가 어느새 제 곁으로 쪼르르 헤엄쳐온 리온을 향해 웃었다. 리온은 이름이 불린 것이 기뻤는지, 그저 해말갛게 웃으면서도 강림의 눈치를 보며 하리의 뒤로 슬슬 숨으려 들었다. 하지만 되려 가은이 심상치 않자, 인어는 어쩔 줄 몰라하더니 곧 미안하다는 듯 물에 얼굴을 반쯤 담갔다. 그 이후를 기억해내려던 하리가, 가은의 목소리에 가은에게 눈을 돌렸다.

 

 

"인어의 이름이 리온이야?"

 

"응, 직접 들었어. 이름이 리온이래.“

 

"리온? 흐끅···. 우리 항구에 들어오는 사람들 이름 같아."

 

"혹시 내가 빠지고 나서 어떻게 됐어?"

 

"말도 마! 우리가 놀라서 너 구해주려고 호수에 뛰어들려고 했는데······."

 

"호수가 들여보내주지 않았어."

 

 

많이 춥진 않아?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강림이 하리의 옆에 살짝 무릎을 꿇고 앉으며 말했다. 칼은 칼집에 넣은 채였지만, 어쩐지 강림이 인어를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강림이 말을 이었다. 너를 구하려고 뛰어들려고 했는데, 호수가 파랗게 빛났다고. 들어가지지 않았다고.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인어가 정신을 잃은 너를 안고 나왔다고. 그러고선 뭍에 올려놓은지 또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네가 일어났다고.

 

 

그렇구나. 강림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하리가 물끄러미 리온을 내려다보았다. 슬슬 가은과 강림의 눈치를 보던 리온이 하리의 시선에 이제는 하리의 눈치도 보기 시작했다. 아주 멀게 느껴지는 방금의 일이 천천히 뇌리를 스쳤다. 그 뒤로 무슨 말을 했더라. 그러니까···

 

 

"뭍에서 목소리를 들으면 유혹당한다고?"

 

끄덕.

 

"그래서 물에 빠트린 거고?"

 

끄덕.

 

"으이구, 말을 했어야··· 아니, 손짓이라도 했어야지!"

 

꽝!

 

"···!!!"

 

 

점차 의식이 돌아오며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해진 하리가 리온의 머리를 대뜸 쥐어박았다. 슬슬 하리의 눈치를 보던 리온은 미처 피할 새도 없이 머리에 꽝 주먹이 박혔고, 아픈지 음소거로 입을 벌린 채 쥐어박힌 머리를 감쌌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미안한지 리온이 고개도 들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했다. 차차 대화 내용을 떠올리는 하리를 보며 일행이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인어는 인간이 홀릴까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고, 그렇기에 저를 믿냐고 물어본 뒤 물속으로 끌어당긴 것이었다. 왜 물에 손짓하지 않은 건지, 일행으로서는 모를 일이었지만, 리온의 입장에서 그런 것을 더 설명해 주었다간.

 

 

'정말 시간이 촉박해질 거야.'

 

 

만에 하나 거부하기라도 했다간 정말 큰일이었다. 그럼 일행에게 곧 해일이 닥칠 것이니 나를 바다로 데려다놓아야 한다는 것을 그 누가 전달해준단 말인가. 마을에 닥칠 거대한 해일. 바다를 다스린다고 불리는 인어를 되찾기 위한 바다의 자연스러운 몸부림이었다. 그것을 모르지 않는 리온이, 일행과 마을 사람들, 심지어는 그 괘씸한 사람들마저 살리기 위해 그 사실을 일행에게 전달해준 것이었다. 그래도 미안한 건 어쩔 수가 없네. 빠르게 계산을 마치고 그리 생각한 리온이, 여전히 눈만 빼꼼 내민 채 일행의 눈치를 한껏 살폈다. 한 대 쥐어박혀도 여전히 하리의 곁을 떠나지 않는 리온을 보며, 가은이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물에 들어가야 한다고 손짓은 해주지 그랬어.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데."

 

"그래, 인어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낸 건가 생각했다니까?"

 

"김현우, 너 그러다 진짜 리온이가 잡아간다?"

 

 

현우의 발언에 못 말린단 듯이 이마를 짚은 가은이와, 그런 현우를 놀리듯 말하는 하리. 강림은 여전히 탐탁지 않은 눈빛이었지만, 본인이 목소리를 듣겠다고 한 것이었으니 진정하라는 하리의 말을 듣고 하리의 옆에 앉았다. 차분하게 숨을 내쉰 가은이 인어를 향해 말했다.

 

 

"다음엔 정말 그러면 안 돼."

 

"설마 믿냐고 물어본 게 이것 때문인 거야?"

 

"너무 화내진 마, 가은아, 현우야. 그래도 내가 듣겠다고 한 거였으니까. 그런데······."

 

 

그 다음 말이 뭐였지? 분명 제대로 들은 것 같았는데. 하리가 왼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으며 기억해내기 위해 애를 썼다. 그 모습에 놀란 가은이 여전히 품에 기댄 하리를 더 꼬옥 끌어안으며 외쳤다.

 

 

"왜 그래, 하리야? 많이 어지러워?"

 

"아, 아니. 그건 아닌데···. 조금 춥긴 하네."

 

 

일행이 모두 한 겹씩 벗어서 하리의 몸을 덮어주고 있긴 했지만, 설상가상으로 해가 저물기 시작한데다 물에 빠졌다 나온 추위가 본격적으로 닥쳐오고 있었다. 슬슬 길어지기 시작하는 수풀의 그림자를 흘깃 본 하리가 다시 시선을 리온에게로 옮겼다.

 

 

'오늘은 내려가.'

 

 

리온이 작게 입으로 뻐끔거렸다. 그 다음 말을 떠올리려 애를 쓰는 하리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면서. 그 모습에 하리가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들은 리온의 입모양을 보지 못한 것일까. 하리는 일행을 돌아보며 이제 해가 질 때가 되었으니, 내려가자는 말을 했다. 하리의 상태를 고려한 일행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현우는 하산하기 전까지 리온에게 다음부턴 꼭 말해야 해, 하고 말하며 산을 내려갔다. 리온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까지 하리를 뜻모를 얼굴로 바라보았다.

 

 

뭐였더라, 정말? 하리는 산을 내려가는 내내 말이 없었다. 일행이 간혹 묻는 질문에만 답할 뿐이었다. 특히 현우가 인어의 목소리가 어땠냐고 묻는 말에, 듣기 좋은 미성이라는 것을 열심히 미사여구를 붙여가며 알려줄 뿐이었다. 강림도 어쩐지 굳은 얼굴로 거의 말이 없었다. 어느새 산의 입구에 다다른 일행은 각자의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정확히는, 일행이 하리를 집으로 데려다주려는 것을 강림이 자처했다. 강림의 부축을 받고 집 앞에 도착한 하리가 강림에게 인사하려던 순간, 강림이 먼저 말을 꺼냈다.

 

 

"하리야."

 

"응?"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야."

 

 

정말 큰일날 뻔했다고. 나지막한 강림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하리가 강림의 이어지는 말을 들었다.

 

 

'···큰일? 어쩐지 최근에 그런 생각을 한 것 같은데.'

 

 

언제였더라? 하리가 강림의 말에 눈을 깜빡이며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런 존재들은 언제 마음을 바꿀지 몰라. 그러면서도 넌 항상···"

 

"아, 기억났다!"

 

 

화들짝 놀란 하리의 비명 같은 외침에 강림이 움찔, 놀랐다. 그 뒤에 하려던 말을 삼킨 강림이, 점점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가는 하리를 보며 말했다.

 

 

"왜 그래, 하리야? 다시 추워졌어?"

 

"아니, 그게 아니라···."

 

"···?"

 

 

점점 기억이 돌아오는 듯, 하리의 안색이 새파랗다못해 새하얗게 질려갔다. 그런 하리의 안색이 걱정된 강림이 하리의 곁으로 다가가자, 하리가 대뜸 강림의 어깨를 짚고 외쳤다.

 

 

"우리, 진짜 큰일 났어!"

 

"···뭐?"

 

 

······왜? 강림이 고개를 기울이며 하리에게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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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온아! 리온아!"

 

 

찰박. 꼭두새벽부터 울려퍼진 하리의 외침에 리온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에서 나왔다. 빼꼼 나온 리온의 어깨를 텁 붙잡은 하리가, 다급한 표정으로 물었다.

 

 

"해일이 온다는 게 사실이야?!"

 

 

머뭇거리던 리온이 곧 고개를 끄덕였다. 하리의 뒤를 따라오던 일행이 리온의 몸짓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놀란 가은이 리온의 앞에 앉아 다급하게 물었다.

 

 

"언제? 언제 오는데?"

 

 

도로록··· 눈을 굴린 리온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니 손가락 두 개를 폈다. 2주? 일행의 물음에 인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의 표정에 한층 절망이 내려앉았다. 해일이 닥친 곳은 많은 사람이 죽을 뿐더러 재건하는 데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당장 일행들만 해도, 이곳을 떠난 적 없을 뿐더러 그들의 부모도 대부분 그랬다. 마찬가지로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던 강림이, 홀로 추측하던 것을 입 밖으로 꺼냈다.

 

 

"네가 바다로 가지 않아서인가?"

 

끄덕.

 

 

뭍에 양팔을 올리고 고개를 묻은 리온이 끄덕였다. 인어가 바다에 있지 않아서, 인어가 있는 곳으로 바다가 밀려온다. 리온에게는 달가운 사실일지 몰라도, 인간인 그들로서는 절망스러운 소식이었다. 곧 시선을 굴려 하리를 바라본 리온이 눈으로 무언가를 묻는 듯했다. 어제, 더 들은 말이 있지 않냐고. 그 시선에 손을 꽉 움켜쥔 하리가 리온에게 물었다. 움켜쥔 양손에 흙이 한 움큼 쥐였다.

 

 

"네가 그 전에 다시 바다로 돌아가면, 해일은 오지 않는 거지?"

 

"설마 어제 하리를 빠트린 게, 이 말을 해 주려고···."

 

 

리온이 잘 기억해냈다는 듯, 하리와 현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들은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해줬구나, 생각한 리온이 어두운 표정의 일행을 돌아보았다. 해일이 온다는 것도 잠시, 자신이 바다로 돌아가면 해일은 오지 않는다는 말에 약간의 희망을 찾은 얼굴이었다. 리온도 할 수 있다면 최대한 구체적으로 방법을 제시해주고 싶었지만, 육지 사정은 물론이고 다리도 없는 리온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이 없었다. 지금 리온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일행이 육지 사정까지 고려한 최적의 계획을 짜도록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리온의 생각대로, 리온의 근처에 둘러앉은 일행이 심각한 얼굴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안 돼."

 

"맞아. 말이 새어나갈지도 몰라. 다시 소문이 퍼지면, 또 누군가 리온이를 다시 잡아올지도 모르고."

 

"그땐 리온이도 정말 위험해질 거야."

 

 

외부인을 끌어들이는 게 거의 불가능한 계획. 일행 네 명이서 계획을 완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행이 다시 토의하며 계획을 세워나가기 시작했다. 인어가 바다로 돌아가야 한다는 거 보니까, 분명 이곳으로 리온이를 데려온 사람도 있을 거야. 그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면 밤에 해야 해. 최단 거리로 리온이를 바다로 데려가야 하는데, 그럼···.

 

 

"리온이를 데리고 산 아래로 내려갈 순 없어. 마을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럼······."

 

"저 벽 뒤쪽으로 가다 보면 좁은 동굴이 있어. 바다와 이어진 작은 동굴이니까, 그곳으로 데려가는 게 나을 것 같아."

 

 

산의 지리를 잘 아는 현우가 한 말이었다. 저 뒤쪽에 동굴이 있다니, 일행이 현우가 가리킨 호수 쪽 돌벽을 보며 놀랐다. 거의 처음 만났을 때, 리온이 숨어있었던 그 벽이었다. 그 뒤로는 험한 수풀에 가려져 있었지만, 현우의 말대로 일행이 다같이 수풀을 헤쳐보니 과연 작은 동굴의 입구가 있었다. 숨을 죽이고 들어보니 쏴아아, 하는 바닷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바다가 특이하게 생긴 산의 아랫부분을 깎아 만든 좁은 동굴인 듯했다. 하지만 너무 좁아서, 겨우 사람 두세 명이 들어갈까 말까한 정도의 입구. 심지어 안쪽으로 보이는 비탈도 경사가 심해서, 웬만큼 발이 빠른 사람이 아니면 가기 힘든 곳이었다. 중간에는 길이 끊겨, 무언가를 지고 내려오기에는 위험한 비탈이 있었다.

 

 

좁은 돌 동굴을 빠르게 훑은 일행이 몇 번의 수정 끝에 가장 괜찮은 계획을 내놓았다. 계획은 대강 이러했다. 다함께 인어를 이 동굴 앞까지 옮기고, 강림과 현우가 리온을 데리고 동굴 안을 내려간다. 길이 끊긴 곳에 다다르면, 미리 그곳으로 내려가 있을 하리와 가은에게 리온을 넘긴다. 얼마 가지 않아 파도가 치는 절벽의 아래쪽이 나오므로, 그곳에 리온을 풀어준다. 무모해보이지만, 일행이 가장 빠르게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었고,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산을 내려가기엔 마을 사람들의 눈이 있었고, 산을 올라가기엔 위험한 절벽이 있으니 다같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길이 조금 험하더라도 좁은 동굴을 타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날 해가 다 지도록 상의하고서 겨우 계획을 고안해낸 일행은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했다. 리온의 무게가 어느 정도 되는지 가늠하기 위해 냅다 자루에 리온을 넣어본 것은 물론이고 - 두 명이서 들기에 충분한 무게였다 - 강림과 현우가 직접 동굴의 비탈길을 내려가보기도 했다. 가은과 하리는 절벽 아래로 향하는 길을 미리 익혀두었고, 동굴의 길이 끊기는 곳의 높이가 어느 정도 되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위에서 손을 뻗고, 아래에서 까치발을 들면 손이 닿을 정도의 높이. 거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연습하고 또 다양한 상황을 가정해 다시 연습했을 때에는, 2주를 채우기까지 닷새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없는 만큼, 일행은 그 누구보다 신중하게 행동해야 했다.

 

 

그렇게 여러 날 동안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쏘다닌 결과, 호수로 향하는 길은 물론이고 동굴로 향하는 길까지 어느 정도 트이게 되었다. 사람이 오간 자국대로 누운 수풀들. 일행이 거의 두 달간 길을 달리해서 호수로 갔기에 호수로 향하는 길에 흔적은 남지 않았지만, 그 주변이 문제였다. 일행이 연습하기 위해 자주 오가며 밟았던 길과 수풀에 일행의 흔적이 남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이 왔다 갔나 본데?"

 

"뭐? 여기를?"

 

 

그 남자들이 발견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인어를 끌어올리기 위해 고개를 숙였던 한 남자가 움푹 밟혀 있는 잡초에 시선을 고정했다. 두 달간 서너 번 정도밖에 오지 않았기에 주변의 풍경이 익숙한 것은 아니었으나, 사람이 이곳을 여러 번 왕래한 듯 수풀이 밟힌 흔적은 확실했다. 그물을 풀려던 남자가 다른 남자와 함께 수풀을 샅샅이 뒤졌다. 과연, 갈수록 수풀이 우거져 몸집이 작은 아이가 아니고서는 갈 수 없는 곳까지, 사람의 흔적이 이어져 있었다. 얼굴을 험하게 굳힌 채 호수 주변을 뒤적거리던 남자들이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 주변을 올라온 흔적은 없어."

 

"어쨌든 저쪽에 사람이 왔었다는 거 아닌가. 그럼···"

 

 

두 남자가 호수를 내려다보았다. 이곳에 왔다면, 저 호수 아래에 있는 인어를 보았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대감님께 말씀드려야겠지? 두 남자가 더욱 목소리를 낮추어 작게 속삭였다. 대감님, 말 새어나갈까봐 이 주변에 관원도 두지 않으신 거였는데. 또 우리만 꾸짖으시겠군. 일단 가지. 두 남자가 리온을 건드리지 않고 조용히 산을 내려갔다. 호수 밑바닥에 잠자코 가라앉아 그들의 목소리를 듣던 리온이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 하루만 더 기다리면 계획을 실행하는 날인데. 설마 그 하루 동안 이 주변에 사람이 깔릴까. 어쩌면 일행이 올 시간에 맞춰, 주변에 사람이 깔리기 시작할지도 모르겠다고. 리온이 잠자코 숨을 죽이고 생각했다. 일행은 내일 밤에 온다. 계획을 미루기에는 이미 늦었고, 계획을 다시 세우기에는 해일이 올 터였다.

 

 

'···되겠지.'

 

 

아니, 되어야만 했다. 그 아이들만이라도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래야 했다. 하지만 제가 무사히 바다로 간 뒤에도 문제였다. 사람이 풀리기 시작하면 아이들이 잡힐지도 몰랐고, 그 뒤에 아이들이 무슨 꼴을 당할지 몰랐다. 자신이 관여할 수 없는, 뭍의 일. 바다에선 무엇이든지 가능한 인어가 하필 뭍에 연을 만들었기 때문인 걸까. 막막한 상황에 습관적으로 몸을 웅크린 인어가 손을 그러쥐었다. 어느새 익숙해진 듯 익숙해지지 않은 크기의 호수. 인어의 꼬리에 죽은 산호와 새카만 돌이 채였다. 그 모습을 보고선, 인어가 고개를 들어 수면을 바라보았다. 계획을 실행될 내일은 그나마 달빛이 밝은 보름이므로, 그 전날인 오늘도 달빛은 밝고 맑기 그지없었다. 수풀에 가려져 달빛이 잘 스미진 않았지만, 언젠가 이곳에 와서 보았던 수면보다는 밝고 온화했다.

 

 

인어는 어설프게 쥔 양손으로, 자신이 바다로 돌아가는 건 둘째치더라도, 부디 그 아이들이 무사하기를 빌었다. 따뜻하고 온화한 그들이, 자신을 잡아온 차갑고 무자비하기 그지없는 이들에게 해를 입지 않길. 인어는 삼백 년을 살면서, 인간이 자신들에게나 했던 기도를 누군지 모를 이에게 했다. 기도를 듣는다면 신일까? 인간의 풍습에나 남아있는 그것에 대고 빌면 들어줄까. 들어준다면, 내일 무사히 이곳을 나가고, 그 아이들도 무사할 수 있을까.

 

 

여전히, 모르겠다.

 

 

그날 이후로 알 수 있는 것은 그저 그들이 다치지 않길 바랄 정도로, 그들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뿐이었다.

 

 

리온이 몸을 천천히 웅크렸다.

 

그러고선,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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