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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장

그로부터 약 2주 후.

 

 

"파도가 점점 거세지네."

 

 

한창 올라가는 동안, 가은이 절벽 쪽을 보며 한 말이었다. 가은의 말대로, 얼마 전부터 절벽에 치기 시작한 파도가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저긴 정말 위험하겠다. 가은의 말에 그리 답한 하리가, 가은의 손을 잡고 비탈길을 잡아주었다. 이윽고 도착한 호수 앞. 일행은 처음 호수를 발견한 그날부터 2주 동안 빠짐없이 호수에 갔었다.

 

 

하지만 인어를 볼 수 있는 건 첫째 날과 둘째 날뿐이었다.

 

 

"왜 안 나오지? 약과랑 연고가 줄고 있는 거 보면 있긴 있는 것 같은데."

 

"아직 우리가 무서운 걸지도 몰라."

 

"우리도 어쨌든 인간이니까."

 

 

지난 며칠간, 결국 일행은 누군가 인어를 여기로 데려다 놓았다고 확신했다. 그것 말고는 설명할 수 있는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같은 인간인 우리도 두려워한다고.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다쳤던 인어가 2주째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등에도 쓰라린 상처가 있을 텐데, 그럼 그곳은 누가 연고를 발라준단 말인가. 인어는 팔이 네 개인가? 네 개면 등에도 연고를 바를 수 있는 거야? 하리가 여전히 고요한 호수를 물끄럼 내려다보며 걱정스레 생각했다.

 

 

 

"오늘도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런가···."

 

"오늘도 두고 가야 하나?"

 

 

강림의 말에 현우가 장난치듯 수면을 휘적휘적 저으며 시무룩하게 말했다. 덩달아 시무룩해진 하리가 수면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같은 위치에 같은 돌이 있었다. 구멍이 송송 뚫린, 조그맣고 동그란 검은 돌덩이. 애꿎은 그것만 내려다보던 하리가 어느샌가 옆에 함께 쪼그려 앉은 강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도 돌아가야겠다. 그치?"

 

"응, 내일 다시 와보자."

 

 

애써 웃으며 강림에게 먼저 말을 건넨 하리가, 강림의 답에 다시 시선을 호수로 돌렸다. 맑은 물 아래를 내려다본 하리가 이윽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엥?"

 

 

돌이 사라졌네? 매일 같은 자리로 와서 같은 위치에 있던 돌을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됐던 하리가 눈을 멀뚱히 깜빡였다. 어디 갔지? 그새 굴러떨어진 건가. 하리의 엉뚱한 소리에 강림도 고개를 기울였다. 무슨 소리야, 하리야? 하고 말을 꺼내려던 강림이 하리의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동그랗게 뜨이자 하리가 보는 곳을 함께 내려다보았다.

 

 

"어."

 

 

하리가 바라보는 곳에는 하리가 늘 찾던 돌 대신, 눈만 빼끔히 내민 인어가 있었다.

 

 

소리도 없이 다가온 인어의 모습에 휘둥그레 놀란 일행이 차마 감탄사도 내뱉지 못하고 멀뚱히 인어를 내려다보았다. 인어 역시, 가장 가까이에 있던 하리를 시작으로,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일행을 훑었다. 차례대로 가은, 현우, 하리, 그리고 강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좀 더 순한 눈빛을 한 인어가, 강림을 보자마자 대번에 눈빛이 사나워지더니···

 

 

촤악.

 

 

"읍···!!!"

 

 

강림의 얼굴을 향해 정통으로 물을 튀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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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강림아?"

 

"응, 난 괜찮아. 저 인어···."

 

 

저에게만 모질게 구는 인어와 마찬가지로 눈빛이 사나워진 강림이 인어를 노려보았다. 인어는 자신은 모르겠다는 듯, 아가미를 한 번 팔락거리며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뻔뻔한 인어의 모습에, 가은이 준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던 강림이 더욱 화가 난 듯 인어를 노려보았다. 그 모습에 얼른 강림과 인어의 사이를 막아선 하리가, 열심히 강림을 달랬다.

 

 

"강림아, 조금만 참아. 저 애도 처음에 우리를 경계해서 그런 거잖아."

 

"맞아, 그리고 인어가 저렇게 오래 나와 있는 것도 처음이고!"

 

 

하리와 함께 끼어든 현우가 말을 덧붙였다. 두 친구의 얼굴을 번갈아 본 강림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오늘은 더 싸움이 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이었다. ··· 오늘 먼저 시비를 건 것은 인어였지만. 그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쉰 하리가, 다시 호수의 가장자리에 쪼그려 앉으며 가은과 눈을 마주하고 있던 인어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인어의 시선이 하리에게로 매끄럽게 굴러떨어졌다. 고작 눈만 빼꼼 내밀고 있을 뿐이었지만, 일행이 있는 쪽으로 가까이 왔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수확이었다. 저번에는 구석에서 나오지도 않았는데. 눈빛도 한결 순해진 걸 보니 지난 2주간의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하리가 생각했다. 곧이어 싱긋 웃은 하리가 인어에게 말을 건넸다.

 

 

"안녕? 넌 이름이 뭐야?"

 

깜빡.

 

"응? 이름이 뭐야?"

 

깜빡.

 

 

응? 머리 위로 물음표를 가득 띄운 하리가 사람 말을 모르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찰나.

 

 

"혹시 목소리가 안 나와?"

 

끄덕.

 

"그렇대, 하리야."

 

"아직 오래 산 인어는 아닌가봐. 하긴, 우리랑 비슷해보이니까."

 

 

그렇구나. 하리가 그제야 알았다는 듯, 다시 인어를 내려다보았다. 나름 사람들끼리 쓰는 몸짓은 할 줄 아는 모양이었다. 인어가 고개를 끄덕임에 따라, 인어의 입 쪽에서 보글보글 거품이 올라왔다. 어느새 현우와 강림까지 인어의 앞으로 모여들었다. 인어는 제 앞에서 칼을 빼든 강림이 여전히 탐탁지 않은 눈빛이었지만 또다시 물을 뿌리진 않았다. 대신 손을 들어, 가은이 허리춤에 매고 있는 작은 천주머니를 가리켰다. 약과가 들어있는 주머니. 그것을 어떻게 귀신같이 알아차렸는지, 가은이 대단하다며 약과를 꺼내어 인어에게 내밀었다. 목까지 모습을 보이며 조심스레 약과를 가져간 인어가 조금 물러나더니, 양손으로 약과를 잡고 움냠냠 먹었다. 눈앞에서 약과를 잘 먹는 모습에, 강림을 제외한 일행의 표정이 절로 흐물하게 녹았다. 배고플까 걱정했던 일행이 다행이라는 듯 안도한 표정을 했다.

 

 

"맛있어?"

 

끄덕.

 

"다행이다."

 

"상처는? 상처는 좀 어때?"

 

 

현우의 물음에 조금 더 뒤로 헤엄친 인어가 슬쩍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확연히 상처가 아문 모습. 하지만 인어가 약과를 한입에 털어넣고 들어올린 왼팔은 그렇지 않았다.

 

 

"?!"

 

"상처가 더 생겼잖아!"

 

"이리 와, 치료해줄게."

 

도리도리.

 

 

아직 손길은 거부감이 드는지, 인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수면을 여유롭게 유영했다. 물에 젖은 머리카락 끝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그것이 조금 거슬렸는지, 고개를 털어 물기를 떨어낸 인어가 다시 일행의 근처로 다가왔다. 그새 약과를 다 먹은 인어는, 호수의 가장자리에 손을 올리고 일행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무언가 더 필요한 것이 있다는 듯.

 

 

"왜 그래? 배고파? 하나밖에 없는 약과였는데···."

 

도리도리.

 

"그럼?"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일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곧이어 가은이 아, 하고선 잠시 뒤,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연고였다.

 

 

"이거?"

 

끄덕.

 

 

인어가 가은이 바닥에 내려놓은 연고를 가져갔다. 곧이어 작은 단지를 싸매고 있던 천을 풀고선, 연고를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떠 왼팔의 상처에 문질거렸다. 서투른 손짓이었지만, 이 상황에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치료였다. 그나마 안심한 일행이, 아예 호수의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인어는 그들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조금은 경계하는지, 그들이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 머리만 빼끔히 내민 채 물살을 부드럽게 갈랐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하리가, 상처에 얼기설기 덧발라진 연고를 보고선 문득 일행을 돌아보며 말을 꺼냈다.

 

 

"인어도 피는 우리랑 같은 색이네."

 

"인어는 여러모로 인간과 많이 닮은 영물이야. 아주 옛날이지만 한때 인간과 친하기도 했어서, 인간의 말이라면 다 알아듣기도 하고."

 

 

어머니께서 알려주셨어, 하고 강림이 덧붙였다. 책에서 읽은 것 말고도, 그 뒤로 무당인 어머니께 인어에 대해 몇 가지를 더 여쭌 모양이었다. 그렇구나, 하고 끄덕인 일행이 다시 인어를 보았다. 틀린 말이 아니라는 듯, 인어는 유유히 물살을 가르며 일행 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머니께서 더 알려주신 건 없어?"

 

"음, 한때 인간과 인어가 친했었는데, 인간이 먼저 배신해서 관계가 틀어졌다고도 하셨어. 인어의 비늘 같은 것이 몸에 좋다는 것을 알아낸 인간들이 먼저 그들을 공격했대."

 

"아···."

 

"슬픈 얘기네."

 

"아마 내가 했던 말 말고 지금 들리는 소문들은 꽤 빠진 부분이 많을 거야. 거짓이거나."

 

"오래된 얘기라서 그럴 수밖에 없겠다."

 

"어쩌면 바다를 다스린다는 말도, 거짓일지 모르지."

 

 

시무룩하게 끄덕인 하리가 호수의 가운데서 물장구를 치며 홀로 놀고 있는 인어를 보았다. 이쪽을 보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 이쪽 이야기를 다 들었을 것이었다. 괜스레 미안해진 마음에 일행이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자, 흘끗 그곳을 본 인어가 연고통을 그곳으로 훌쩍 던졌다. 얼결에 품에 들어온 연고통을 잡은 현우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시 인어를 보며 말했다.

 

 

"저기, 이건 우리가 너 주려고 가져온 거야."

 

 

인어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손으로 물을 찰박거렸다.

 

 

"···다시 달라는 것 같은데?"

 

"그, 그런가?"

 

 

현우가 받은 연고통을 인어 쪽으로 살짝 던졌다. 날아온 연고통을 받아낸 인어가, 이번엔 그것을 강림에게 던졌다. 인어의 손짓에 강림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것을 도로 인어에게 던졌고, 이 일이 가은과 하리에게도 반복되었다. 놀자는 의미구나. 어느새 그것을 깨달은 일행이, 조금 즐거워진 얼굴로 간단한 놀이를 하듯 연고통을 주고받았다. 탁. 하리가 던진 연고통을 받아낸 인어가, 일행의 발밑에 연고통을 올려놓았다. 그리하고선 아주 잠깐의 놀이가 즐거웠다는 듯, 인어는 일행들과 한차례 눈을 마주하고선 물속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엥?"

 

"가 버렸네···."

 

"오늘은 그만 놀고싶은가봐."

 

"그래도 이제 우리를 조금 믿는 것 같은데?"

 

 

현우의 신난 목소리에 하리와 가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홀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은 강림은 여전히 인어가 못마땅한지 인어가 사라진 수면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내일도 나오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그럼 오늘은 이만 가자. 더 지체하면 해가 질 거야."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벌써 내려가면 노을이 질 시간이었다. 해가 없을 때의 산은 위험했기 때문에, 일행은 해가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산을 내려갔다.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날이 꽤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살짝 얼어붙은 이파리를 흘끔 돌아본 하리가, 산 아래에서 일행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점점 짧아지는 해가 아쉬웠지만, 그만큼 밤에 생각할 시간이 늘어난 건 달가운 일이었다. 하리는 잠들기 전, 인어가 그랬던 것처럼 생각했다.

 

 

내일도 다시 가봐야지.

 

···그런데 바다로 돌아가고 싶어하진 않는 건가?

 

우리를 이제 믿는 걸까.

 

모르겠다.

 

 

하리가 눈을 사르륵 감았다.

 

수면에 고인 물거품이 산 채로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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