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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이제 웃어보세요.

​화연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제국. 이곳은 규모로 보았을 땐 그리 크진 않지만 작지도 않은 제국, 세피로트 제국이었다. 세피로트 제국은 역사 깊은 학문 지식과 특히 구천을 떠돌며 사람들을 헤치고 다니는 악령들을 어둠으로부터 구원해 주는 퇴마 법, 세피르 카드의 기술이 발전되어 있는 퇴마사들의 제국이라 할 수 있었다. 이 땅은 어둠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많은 퇴마사들이 전사한 곳이기도 하여 영혼의 성지라고 불리울 정도로 다양한 퇴마 법과 함께 그만큼 악령이나 귀신들도 많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 번영한 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까닭은 전부 세피로트의 나무 덕분이었다. 세피로트의 나무는 생명의 나무라고도 불리며 10개의 세피라로 나누어진 신성한 빛의 나무 중 하나였다. 세피로트 나무 위치에 세피르 신전이라는 고귀한 신전이 세워지고, 아이기스라는 신전의 신관 조직이 주를 이루는 마치 새로운 강대국이라 불릴 만큼 매년 성장하고 있는 제국이라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제국에도 암흑기는 있었다. 태초부터 빛과 어둠은 함께였으니 일시적으로 어둠이 빛에 의해 사라졌다 하여도 완전히 소멸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누구에게나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 두 가지의 마음이 공존하기 마련이었으니.

 

그런 혼란한 시기에 세피로트 제국에는 큰 경사 소식이 들려왔다. 그건 바로 황후 폐하의 회임 소식. 늘 아이를 갖고 싶어 했던 황제와 황후 부부는 드디어 자신들의 아이가 태어날 생각에 이 음산하고 불경스러운 암흑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후, 세피르 신전에서 태어날 아기님을 위해 신의 축복과 은혜를 내려주려 황궁에 입성한 신전 소속 아이기스의 대신관인 아니체토가 한 때 은총을 내리던 그 순간, 세피로트의 신이 전하는 신탁이 내려졌고, 결국 은총은 내리지 못한 채 신탁은 시작되었다.

 

 

 

' 빛과 어둠은 언제나 함께하리. 곧 태어날 제국의 미래는 세피로트의 은총과 함께 클리포트의 저주가 내려질 것이니라. 세피로트 나무의 신성함은 사라질지언정 클리포트의 나무가 새로이 뿌리를 잡네. '

 

" 말도 안 돼.. 이럴 수가.. 우리의 아이가.. 어둠의 힘인 클리포트의 힘을 갖게 된다...? "

 

" 아닙니다.. 아니에요.. 이 아이는.. 아이는..! "

 

 

신탁을 들은 모두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혼란에 빠졌다, 황제도 마찬가지로 그대로 얼어붙어 같은 말을 반복했고, 황후는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자신의 뱃속에 어둠의 아이가 잠들어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억울하고 무섭고, 두려웠는지 벌벌 떨기 시작하며 그대로 혼절하였다. 급히 의관을 불러 살피고, 안정을 취하게 하였지만 너무나도 큰 충격에 빠졌던 황후는 신탁을 받은 그날 이후로 패닉 상태에 빠져 식음을 전폐하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으려 하였다.

 

결국 쇠약한 상태로 어쩔 수 없이 날이 다가와 아이를 출산하였지만 몸이 버티질 못해 아이를 낳고 바로 숨을 거두게 되었다. 황후는 태어날 때부터 황제의 짝이었으므로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친한 소꿉친구 같은 사이처럼 친했다. 늘 같이 다녔고, 황궁에선 항상 귀여운 잉꼬부부라 불리며, 진정한 사랑을 맹세했던 황제 부부의 아름다운 일화는 이날로써 종결되고 말았다.

 

황제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쳐다보지도 않은 채 바로 황궁에서 멀리 떨어진 별궁으로 유배 보내듯이 떠나보냈다. 보기 싫었을뿐더러 사랑하는 황후를 앗아간 가증스러운 아이라 생각했지만 어찌 되었든 황후 소생의 아이이고, 세피로트 황가의 혈통을 이어받았기에 바깥에 내다 버릴 수도 없었던 지라 어쩔 수 없이 유배형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아이에게 전담 기사도 붙여두었다. 이름은 루만으로 본래 세피르 신전 아이기스 신관 소속의 사람이었으나 기사의 길을 걷고 싶어 삶을 바꾼 사람이었다. 루만은 아이가 너무 불쌍해 보였다. 비록 신탁을 받고 저주받은 아이라 할지언정 태어나자마자 누군가에 품에 따스히 안겨보지도 못한 채 뒷 방 신세가 된 황자를 가여워했고 불쌍히 여겼다. 그리하여 루만은 자신의 아이처럼 지극정성으로 키웠고, 리온 레이몬드라는 어여쁜 이름도 지어주었다.

 

 

***

 

" 헉.. 헉..! 드.. 들으셨습니까! 황자님!! "

 

" 아 시끄러워. 이른 아침부터 뭐야 루만. "

 

" 지금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라고요~! 하하! 제가 가져온 소식 들으시면 깜짝 놀라실 텐데~ "

 

" 뭔데 그래? 어제 조리실에서 음식 몰래 훔쳐 먹은 거 주방장한테 들키기라도 했어? "

 

" 그런 게 아니라요! 황자님께서 드디어 황실에서 인정받으시고 황위 계승권을 가지게 되셨다고요!! "

 

 

이름 리온 레이몬드 세피로트. 나이 17세. 성격 무척 까칠하고 예민함. 몇 년째 뒷 방 신세인 황자의 자기소개라 할 수 있었다. 애초에 이름도 아버지라 불리울 황제가 아닌 자신의 전담 기사이자 스승님이라고도 할 수 있는 루만이 지어준 이름이었다. 어릴 때는 몰랐지만 자라고 보니 별로 원치 않아 하는 듯하였다. 그런 이름은 더 밝고, 긍정적인 사람에게나 잘 어울릴 것 같은 이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름을 바꿔 달라 애원했지만 루만은 안 된다면서 그를 계속 타일렀고 결국 그의 다정다감한 눈빛에 리온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걸 계속 꺼려했다.

 

그랬던 저에게 갑작스레 황위 계승권이라는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 덜컥 놓아진 게 아닌가. 사실 바라지도 않았던 리온은 어느 변방 마을에라도 가서 신분세탁하고 조용히 쥐 죽은 듯이 살까 고민도 했었던 모양이었다. 물론 그랬다간 곁에 있던 루만이 가만두지 않았을 테지만. 아무튼 그에게 있어서 황위 계승권이란 이런 존재였다. 자신은 더 이상 황자가 아닌 황태자의 신분이며, 이 쪽방 같은 별궁이 아닌 넓은 황실의 본 궁에서 살아가게 될 거란 말이었다. 더불어 지금의 황제가 승하하면 그다음으로 황위 계승권을 가진 리온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는 다소 어마어마한 규모의 중대 임무 같은 막중한 말이었다. 리온은 루만의 말을 듣는 순간 사고가 정지되어 같은 말만 계속 반복해왔다. 의문형의 뭐? 라는 말만 말이다.

 

루만은 그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놀랄 일이라 생각했지만 역시 차갑고 냉철한 그에겐 기대해선 안 되는 표정 변화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접어두고 얼마나 대단한 자리인지 하나부터 열까지 제 입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 루만을 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나도 다 아니까 허세 좀 그만 부려라 하며 자리를 뜨는 리온이었다.

 

 

 

***

 

" 누나, 누나! 우리 같이 황궁에 가자! 가면 맛있는 것도 엄청 많을 거야~ 그치? "

 

" 얘는 뜬금없이 무슨 잠꼬대 같은 말을.. 아버지 뭐 하세요? "

 

" 우리 딸~! 흑흑.. 우리가 드디어 황궁에도 가보고.. 이 아버진.. 너무나도 기쁘단다. "

 

" 예? 정말이에요? 갑자기 왜요? "

 

" 새로 즉위하신 리온 황태자 전하의 탄생일을 축하하며 여는 무도회인데, 올해는 황태자 전하께서 아량을 베풀어 신분 관계없이 황궁 출입이 가능하도록 허락하셨단다. "

 

 

수도에서 한참 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인 에버린 마을. 이곳에는 비록 가진 재산은 별로 없지만 마음씨 좋은 백작 부부와 그의 아이들이 사는 엘로디 백작 가문의 저택이 있었다. 예로부터 엘로디 백작 저는 가난하고 부족한 사람들을 도와 아량을 베풀어 살아가는 선한 귀족 가문이었지만 재산이 그리 많지는 않아 곧 몰락 귀족의 위기로 접어들 수도 있는 가문이라 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열심히 살아가려 노력하였다. 그런 가문에서 오랜만에 수도 땅을 밟아보는 것이 그리도 기뻤는지 엘로디 백작과 백작 부인, 그리고 그녀의 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기뻐하며 도착한 편지를 손에 꼭 쥐고선 웃음을 전파시켰다.

하리 엘로디. 이름도 평범하고 가진 것도 없지만 착하고, 친절한 마음씨를 지닌 작은 시골 마을의 소녀였다. 올해로 15살이 되는 그녀는 지금쯤이면 황궁에서 데뷔탕트를 치렀어야 할 어엿한 백작 영애의 나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초대받지 못하여 데뷔탕트를 치르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아쉬울 것이 없었다. 만약 데뷔탕트의 초대받아 수도에 가게 되었다면 그날 자신의 오랜 친구이자 소중한 사람인 샤를리엔의 생일을 놓쳤을 테니 말이다.

 

황태자 전하의 은덕으로 처음으로 수도 땅을 밟아볼 수 있게 된 하리와 하리의 동생 두리. 특히 동생인 두리는 먹을 것에 진심이어서 무도회보단 진수성찬을 기대하는 중인 것 같았다. 백작 부부와 백작 가의 자제들은 다소 낡았지만 정겨운 마차에 함께 올라타 수도인 세피르로 향했다. 마을에서 떨어져 오랜 시간 여행하는 것처럼 떠돌게 된 건 얼마 만인지 그리우면서도 낯선 향기에 그녀는 설레는 마음을 애써 감추고 나아갔다.

 

 

 

***

 

" 제국의 작은 별, 리온 레이몬드 에스탈 세피로트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

 

" .... "

 

 

 

황궁의 경사라고 불릴 수도 있는 날. 오늘은 리온 황태자가 태어난 탄신일이었다. 그런 의미와 함께 새롭게 즉위한 그의 풀네임을 부르며 정중히 인사를 하는 연회장의 모든 백성들, 그리고 귀족들과 대신들이었다. 하지만 처음 받아본 인사여서 낯설었는지 아니면 일부러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인지 그는 멍하니 응시하기만 할 뿐 어떠한 행동이나 표정도 없어 연회의 분위기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져만 갔다.

 

결국 이 사태를 잠재운 것은 한숨 쉬면서 바라본 황제였다. 모두 황제의 등장으로 살얼음판 같았던 방금 전에 분위기는 모두 잊은 것인지 환호성을 지르며 황제를 환대하였다. 그 모습에 황태자는 무언가 조용히 내뱉었지만 아무도 그 말을 듣진 못하였다. 잠시 아수라장이 된 듯 시끌벅적한 연회장을 조용히 시키고, 다시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무도회를 이어간 황제와 언뜻 비교되어 보이는 시간이었다. 그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치켜 올라가는 듯했다.

 

 

 

" 황태자 전하. 표정이 무섭습니다.. 좀 상냥한 표정을 지으시는 게.. "

 

" 시끄러워. 내가 무슨 표정을 짓든 뭔 상관이라고.. "

 

" 하아.. 이것 참 난감하군.. 그렇게 무서운 표정을 지으시니 좀 보십시오. 영애들이 이쪽엔 올 생각도 없으시잖아요~ "

 

" 그렇게 무서우면 오지 말라 해. 나도 마음에도 없는 춤 별로 내키지 않으니까. "

 

 

루만의 당황스러운 저 표정하며, 상황을 극복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교차하는 게 훤히 들여다보였다. 여전히 영애들은 황태자가 너무나도 아름답고 동화 속 백마 탄 왕자님처럼 멋있어 보였지만 저 무서운 표정에 압도되어 가까이 조차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하나라며 옆에서 걱정이 앞서던 루만과 한숨 쉬며 지루한 연회장 내부를 쭉 지켜보던 리온은 어떤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의 아량으로 평민들도 함께하는 연회장인 만큼 격식 없는 무도회를 열고 싶어서 따로 평민층과 귀족층을 나누지 않고 찾아온 모든 사람들을 한 연회장에 부른 것은 리온의 배려였다. 그는 까칠하게 굴어도 백성을 아끼는 마음은 황제보다 더 유별났다. 늘 책으로만 읽었어도, 직접 보지 못했어도, 그들의 삶을 언제나 공감하며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가득 찬 그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귀족이 해서는 안 될 못난 짓을 목격했기에 그는 분노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단은 조용히 지켜보다가 상황이 여기서 더 악화된다면 그땐 자신이 나서 해결하기로 맘먹었다.

 

 

 

" 이보세요! 사람을 그렇게 밀치고 가는 게 그쪽 가문의 예의범절인가요? "

 

" 뭐.. 뭐야? 드레스엔 보석 하나 없는 촌스러운 계집 주제에..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

 

" 그쪽이 누구신지는 제가 알 필요 없고요. 방금 밀치고 가셨잖아요. 이 분에게 사과하세요. "

 

" 하, 고귀한 제국 서열 1위 공작 가의 하나뿐인 딸인 내가 이런 하층민 녀석에게나 사과 하려고 여기 온 줄 알아? 보아하니 평민은 아닌 것 같은데.. 수준 떨어지게.. 요즘엔 몰락 귀족도 황궁에 들어오나? "

 

 

 

" 거기까지. 이제 그만들 하시죠. "

 

" ..! 황태자 전하..! 감히 몰락 귀족의 신분으로 공녀 신분인 저를 모욕하였습니다. 부디 황태자 전하께서.. "

 

" 이 여인. 정말 불쾌하기 짝이 없어. 당장 내쫓거라. "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그저 무도회가 처음인지라 신이 나서 들뜬 어린아이가 공작가의 공녀와 부딪혀 넘어진 것이었다. 그것도 공녀가 앞을 제대로 보고 걸었더라면 그 아이와 부딪히지 않았을 일이었지만 자신의 잘못을 신분 차이를 이용하여 아니라고 부정하고는 뒤집어씌운 것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켜보고 있었던 리온과 루만은 상황을 좀 더 지켜보고 혹여 소란이 더 거세지면 직접 나설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느 심성 착한 영애의 도움으로 인해 사건은 쉽게 마무리될 수 있었다. 멀리서부터 지켜봐온 그는 사건은 이미 생각에서 벗어던진 채 그녀가 눈에 들어올 때부터 오직 그녀만을 푸른 눈에 담고 있었다. 선량하고 자상하며 배려심이 많고, 참된 사람임을 단숨에 눈치채버린 것이었다.

 

 

 

" .... "

 

" 그.. 그.. 저는 그저! 이 아이를 도와주려 한 것뿐입니다! "

 

" 춤. "

 

" 네? "

 

" .. 저랑 한 곡 추시죠. 아가씨. "

 

 

 

***

 

사건은 일단락되고 갑작스럽게 다가온 춤 신청. 그것도 그녀와 황태자 둘 다 태어나 난생처음 추게 된 첫 춤이었다. 그의 행동을 보고 모두 놀람을 금치 못하였다. 그건 함께 있던 측근인 루만도 마찬가지였다. 살면서 한 번도 춤춰본 적 없는 그녀는 보기 좋게 거절하려 했으나 이미 첫 번째 왈츠 곡이 자연스레 흘러나왔고, 황태자 리온은 어느새 춤을 추기 위한 포즈까지 잡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두 손을 가볍게 맞잡은 채 음악에 맞춰 그녀를 리드했다. 자신도 여인과 함께 춤을 추는 것은 처음이라 많이 긴장하고, 실수하면 어쩌나 생각했지만 어느새 샹들리에의 불빛이 두 사람을 연회 중앙까지 인도하였고, 리온과 하리는 자연스럽게 춤을 추게 되었다.

 

 

 

" 살면서 이렇게 우아한 춤을 춰본 건 처음이에요! "

 

" ... 그러신가요. 그럼 더 즐기시죠. 이 시간을. "

" 저보곤 즐기라 하시면서 전하의 입가는 여전히 무표정이신데요. "

 

 

그녀는 그의 아무렇지도 않은 무표정이 너무 건조해 보였는지 말하면서 그의 표정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황태자는 당황하며 그런 썩소를 짓지 않았다면서 부정했지만 그녀는 정말 똑같다며 그의 신분을 알고 있음에도 친구처럼 편히 대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왈츠의 후반부 부분이 흘러나오고 긴 시간의 여유도 끝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음을 알게 되자 리온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아직 그녀의 이름도, 어느 가문의 사람인지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이 왈츠가 끝나게 되면 손을 놓아버린 채 어딘가로 휙 가버릴 법한 불안감에 휩싸여 서둘러 물어보기로 결정하고는 입을 뗀 순간이었다.

 

 

 

" 에이, 이젠 좀 웃으시면 안 돼요? 웃으시면 더 멋져 보일 텐데요? "

 

" 타고났는데 어떡하라고.... "

 

" 푸흡.. 쭉 이 표정이셨다고요? 에이 설마~ 한 번은 웃어보셨겠죠! 자, 전하, 이제 웃어보세요. "

 

" ... 너란 사람은 참.. 유별나구나. "

 

 

 

다소 천방지축에 말괄량이 같은 모습을 지닌 그녀였지만 그는 그런 그녀가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정말로 살면서 한 번도 표현한 적 없는 미소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녀에게 보여주었고, 연회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과 심지어 황제까지도 그의 모습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싱그러운 벚꽃 같기도, 아님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조잘조잘 이야기꽃을 피워내는 새하얀 아기 토끼 같은 하리의 모습에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차마 지울 수 없었던 리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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