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솜
“신비아파트 – 빛의 뱀파이어와 어둠의 아이” 의 약 스포일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민들레
매우 흔한 다년생초이다.
마당을 가꾸는 이들에게는 주적이며 강력한 잡초이다.
너와의 첫 만남에서의 나는 그렇게 바람 한 점 타고 날아온
민들레 홀씨였다.
나는 샛노란 억센 잡초였을 뿐인데,
그런 나를, 바라보아 준 것은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운 일이었다.
나는 어릴적부터 주변에서 미움받기 십상이었다.
그저 세상이라는 큰 굴레 속에서 운이 좋지않게
잡초로 태어난 나였는데, 그런 나를 좋게 봐주는 이는
손에 꼽을정도로 없었다.
어둠과 빛 – 그 중간 어느 곳에서
나는 항상 헤매었다.
어릴적의 그 가르침은 단어 단어로만 남아있을뿐
형식만 남은 단어 몇개로 나의 정체성을 어찌 할순 없었다.
형식만 남은 가르침의 단어들과
나를 버리지 않았을 거라는 굳은 믿음은 오히려 나를
휘청거리게 할 뿐이었다.
나는 정착하고 싶었다. 바람을 타고 다니는 홀씨는 언젠가
양지바른 곳에 정착하여 나의 꽃을 활짝 틔우고 싶었다.
너를 처음 만나고 너와 일반적인 대화를 나누는 그 순간부터
나는 직감했다. 이곳에 정착할 순 있어도, 나는 그저
너를 바라보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겠구나.
“구하리 아웃!”
사실 아웃이라는 의미가,
나라는 공이 너의 규정선을 조금 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이루지 못할 바람이었음에도 말이다.
사실 학교라는 곳이 너무 즐거웠다.
눈을 감고 빛을 즐겼다.
나의 옆에는 태양보다 더욱 빛나는 네가 항상 있었다.
너의 시선을 쫓았다.
네가 바라보는 곳, 네가 좋아하는 것, 네가 아끼는 것들.
난생처음 떠나지 않을 빛을 직감했기에,
너에 대해 더욱 알고 싶었다.
나는 미숙했기에 자주 실수하였고
그만큼 너를 많이 좋아했다.
그니까 내 말은 친구로서의 좋다 가 아닌
나의 애정이 담겨있는 ‘좋아해’ 였다.
-
장난스럽게, 때로는 진지하게 너에게 다가가 보았다.
하지만 비가 오던 어느 날, 혼자 우산을 쓰고 가던 내가
바닥을 내려다보았을 때 물웅덩이에 내 모습이 비추어져 있었다.
태양을 쫓기위해 너무 높게 날아버려 날개가 흉하게 타버린 나.
너를 지독하게도 좋아했기에 나의 흉한모습이
너에게 비교되는 것만 같아 더욱 수치스러웠다.
-
그날, 나는 돌아오지 않을 봄에게 말하였다.
괜찮지 않아.
내가 너를 좋아하나봐.
괜찮아, 대답을 바란 건 아니니까.
기다릴게.
-
‘너의 옆엔 항상 그 아이가 있었기에.
너의 시선 끝에는 항상 그 아이가 있었기에.’
-
모든 일이 끝났다.
분노에 젖어있던 봄은 다시 따스해졌고
우리의 평화 또한 그대로였다.
우리의 라는 단어를 무심코 생각했기에 나는 다시 되뇌어 보았다.
나는 어느 곳에도 정착할 수 없다.
그럴 운명으로 태어났기에 주변의 이들이 불행해지기에
나는 타고난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릴 수 없다.
이대로 거스르다간 거대한 수레바퀴에 깔릴 뿐이었다.
-
봄이 돌아온 이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추위에 견디지 못해 몰래
아이기스에서 빠져나왔다.
물론 알면서도 쉬쉬 해주신 거 같긴 하지만.
그게 바로 아이기스의 수락 의미였다.
서로의 침묵을 지켜주는 것.
내 평생 배워온 것이었다.
학교도 잠시 가정학습을 제출하여서 학교도 갈 수 없는 노릇,
종일 너를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작은 배낭에서 시간표를 꺼내 보았다.
“월요일, 3교시, 아! 야외수업”
이걸 왜 잊고 있었을까, 운동장에서 하는 야외수업이라면
몰래 들어가 하리와 잠시 시간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태연하게 나는 학교 담장을 넘었다.
그러고선 모자를 눌러쓰고 한창 축구를 하던 하리에게 다가가
잠시만 뒤편으로 나와달라고 부탁했다.
은근슬쩍 다가갔다가 다시 나오는 것,
그것이 퇴마사의 본분이 아닐까? 그 녀석도 매일 그랬는데.
-
나는 하리 손을 잡고는 담장개구멍으로 나갔다.
학교 뒤에 있는 생태 체험용으로 만들어져있던 작은 동산.
학생들끼리의 출입이 금지되어있다.
“갑자기 뭐야 리온아, 그나저나 이렇게 들어와도 괜찮은 거야?
그나저나 너 임무는 어쩌고??”
“나 보고 싶은 거 아니었어?”
머리에 꿀밤한대 쥐어박힐뻔한 걸 겨우 막고 얘기했다.
“별건 아니고, 당분간 못 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너랑 단둘이 오붓하게, 아 미안 미안 인상 풀고
너랑 단둘이 진솔하게 얘기해보는 마지막 시간이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내가 장난을 칠 때마다 구겨지는 하리의 표정이 제법 볼만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무슨 일이라도 있어?”
언제나 나를 걱정해주던 그 목소리에 가슴이 철렁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그 일을 겪고 나서도 나의 태양은 저물지 않았구나,
나의…. 아니 모두의 봄은 그대로 구나.
“별건 아니고 이거 구경시켜주려고,
하리야 자세 좀 낮춰서 살짝 앉아봐.”
나는 내 겉옷을 벗어 하리가 앉을 곳을 마련해주었다.
나의 감정을 털어놓고 하리의 감정을 더욱 확고하게 알아버린 나는
이전보다 더욱 실수도 적고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이게 기다린다는 마음이겠지.
내가 5년 동안 그를 기다렸을 때보다
조금은 더 안정적인 느낌이었다.
-
하리가 앉아서 주변을 구경하고 있었다.
주변은 잠자리와 가을 색의 나비가 주위를 맴돌았다.
하리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매력이 있는
들꽃이 그 주변을 이루고 있기에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 장면을 사진으로 남긴다면 사진 속에선
희미한 풀냄새가 날 것 같았다.
나는 민들레 한 움큼을 쥐었다.
민들레 한 움큼은 아직 노랗게 피어있었다.
아직은 날씨가 따뜻한 모양인지
홀씨가 된 민들레는 찾기 힘들었다.
내가 진땀을 빼며 민들레 홀씨를 찾고 있던 그때였다.
“오 불면 날아갈 거 같네. 리온아 벌써 민들레 홀씨가 보여
딱 두 송이 꺾었는데 너도 하나 볼래?”
‘너는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준다.
잘못된 길을 걷게 된 사람들을 설득하고 위로해준다.’
하리가 민들레 홀씨를 불었다.
‘나는 그중의 하나다. 그 많은 민들레 홀씨 중 하나.
네가 불어주었기에, 네가 찾아주었기에 시작할 수 있었다.
마음을 고쳐먹고, 친구를 만들고, 외적인 정착이 아닌
내적인 정착의 디딤판이 되어 도와주었다.’
하리가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뭐라고 입을 뻐끔거린다. 작은 입으로 우려의 단어들을 담아 말해준다.
형식만이 남은 단어들의 집합체가 아닌
마음에서 나오는 진심이 담긴 걱정의 단어들.
이상하게도 귀가 먹먹하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귀신의 소행일까.
구천을 떠도는 어느 영혼의 장난일까.
신이 나에게 내린 운명의 일부일까.
그 무엇도 아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눈에서는 눈물이 맺혀 흘렀다.
귀는 먹먹하고 눈앞은 자꾸만 흐렸다.
나는 담담히 눈물을 흘려보내려 했지만
하리 앞에서 차마 그럴 순 없는 노릇이기에
나는 흙 묻은 손으로 눈가를 비비려고 했다.
“리온아 괜찮은 거 맞아? 손으로 눈 비비지 마. 큰일 나.”
나의 손목을 붙잡은 하리가 말했다.
“무슨 일 있으면 꼭 말해, 우린 친구니까. 서로의 고민 하나쯤은 들어줄 사이니까.”
하리에게 주려던 민들레 한 움큼을 뒤로한 채
나는 그 아이 앞에서 그 어느 때보다 서럽게 울음을 보였다.
-
그날 이후 나는 다시 본부로 돌아왔다.
한참을 다시 임무에 치어 살다 문뜩 생각이 들어
본부 뒤뜰로 나와 아직은 노란 민들레 한 송이를 꺾어 왔다.
민들레 한 송이를 잘 다듬어 압화로 만들었다.
하리에게 편지를 쓰고 편지 봉투 안에 넣을 생각으로 말이다.
조심스레 한 자 한 자 편지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잘 말려진 압화를 끼워 넣고 우표를 붙여 보내었다.
민들레, 꽃말이 뭐였더라. 하고 곰곰이 생각했던 나였다.
-
“리온 레이몬드? 대장님이 급하게 부르신다,
꽤 중요한 임무 같던데 어서 가보도록.”
꽤 높은 간부분께서 직접 나에게 찾아오더니
무슨 일인가 싶었다. 나는 내가 죽는 일에라도 나가는 줄 알고
이럴 줄 알았으면 편지를 아예 유서마냥 장황하게 써둘걸.
이라고 너스레 생각했다.
-
쿵쿵거리는 소리와 기분이 나쁘게 끈적거리는 소리
이승에 대한 짙은 미련이 평소대로 느껴졌다.
“말도 안돼”
“욕망이 너무 강하다 우짜면 좋노”
제발 내가 늦은게 아니길,
그 누구도 다치지 않았길.
“심연의 구름 게부라!”
옅은 파란색 연기가 하리일행과 금돼지 주변을 자욱하게 덮었다.
“하리야 잘았었어?”
아, 기억났다. 민들레 꽃말.
너에게 항상 고마웠어.
친애하는 나의 벗 구하리.
-
민들레
꽃말은 행복, 감사하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