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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장

그 후, 아주 오랫동안 바다가 잠잠했다.

 

 

말 그대로 고요함 그 자체였다. 수시로 밀려오는 평소 같은 파란이 아니면, 작은 파도조차도 일지 않았다. 무너진 절벽으로는 특히 그랬다. 그곳으로는 파도가 치지 않았다.밤새 불을 끈 마을 사람들은, 어느샌가 슬쩍 나타난 아이들의 존재에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놀란 것은 아이들의 부모 뿐이었다. 하지만 곧 마을 사람들도 전부 놀랐다. 한 아이의 등에 업혀온, 조그만 아이의 죽음 때문이었다. 그 아이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 조그만 마을.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울다 실신한 아이의 어미를 시작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 아이를 애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장례가 치루어졌다. 평민들의 장례였기에 화려할 것도, 구경할 것도 없었지만, 특이하게도 바다 근처에서 진행되었다. 죽은 아이를 업고 온, 무당을 어미로 둔 아이의 의견 때문이었다. 너무 울어서 곧 앓아누운 다른 두 아이와 달리, 그 아이는 그저 원망스러운 눈으로 며칠이고 바다를 바라보기만 했다. 충격에 말을 잃은 걸까, 걱정하던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의 신체는 멀쩡했다. 그러다 곧 장례를 의논하는 날, 아이가 그 원망스러운 시선을 거두고 그렇게 말했다. 장례를 바다 근처에서 치루자고. 입안에 쌀은 넣어주지 않아도 된다고. 그게 무슨 말이냐고 어른들이 타박했지만, 곧 아이의 입안에서 발견한 영롱한 비늘을 보자 그들은 더 말을 붙이지 않았다. 어떤 물고기의 것보다도 영롱하고 우아한 비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것이 보통 물고기가 아닌, 근래 소문으로 들었던 인어의 비늘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터였다. 다른 아이들이 구체적인 상황을 말해주지 않았으니, 아마 어른들은 그 아이가 소문으로 들려오는 인어에게 화를 입어 죽음을 맞이한 것 정도로 왜곡해서 생각할 터였고. 살아 돌아온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어느새 아이의 원망스러운 시선은 바다가 아닌, 저 산 옆의 어느 양반 대감집을 향해 있었다. 마치 원망할 대상을 잘못 찾았다는 듯, 목적지가 바뀐 시선이었다. 그 아이뿐만이 아니라, 겨우 자리를 털고 일어난 다른 두 아이도 그랬다. 어른들이 보채도 정확한 이유나 사인을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그 아이들의 시선으로 알 수 있었다. 그 대감 댁이 연루되어 있는 일이구나. 하지만 이 근방에서 누구보다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대감의 귀에 들어갈까, 그것을 함부로 말하고 다니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빙 도는 듯한 겉도는 소문이 자연스레 돌았다.

 

 

저 집 아들이 죽을병에 걸려서, 의식이 오락가락한대. 지금은 깨어났으려나? 그래서 대감님이 요새 통 안 보인 게 아들 살릴 약 찾으려고 그런 거잖아. 혹시 모르지, 대감님이 인어 잡으려다가, 그 애가 대신 화를 뒤집어쓴 걸지도. 웬 인어? 아니, 그 인어의 비늘이 만병통치약이라잖아. 같은 헛소문. 아이들은 그런 소문을 모두 알고 있었음에도, 그저 계속 함께 다녔다. 함께 다니면서도 말을 잘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약 일주일 뒤, 죽은 아이의 장례식날이 되었다.

 

 

장례식은 아이의 건의와 부모의 동의로 바다 근처에서 진행되었다. 조촐하고 짧은 장례식이었지만 마을 사람들, 특히 살아온 아이들과 부모, 어린 남동생의 슬픔은 그러지 못했다. 죽은 아이의 시신도 그랬다.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썩거나 구더기가 꼬인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아이의 부모는 그런 아이가 아직 자는 것 같다며, 관에 넣지 못하고 한동안 울었다. 며칠을 앓아누웠다 일어난 두 아이와 달리 눈물도 잘 흘리지 않던 다른 아이는,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쓰러졌다. 장례를 도운 그 아이의 어미, 그러니까 마을의 하나뿐인 무당은, 묵묵히 아이를 안아들고 사라졌다. 그것이 단지 끝이었다. 원래 한 사람의 죽음이란 이렇게 보잘것없다. 그 아이가 떨어지며 만든 작고 나약한 물보라처럼.

 

 

장례식날에도 바다는 잠잠했다. 심지어 그날 이후로 물고기조차도 잘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소금도 잘 나오지 않았다. 바다가 점점 싱거운 맛을 띠게 된 것이었다. 그것 때문에 한동안 마을 전체가 경제적 위기를 겪었다. 물고기가 죄 바닷속으로 숨어버린 것처럼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다가 노했다. 그런 소문이 돌았다. 노한 것보다는 슬픈 것처럼 보였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 마을 사람들이 무엇이든 끌어모아 바다에 치성을 드렸음에도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그러다 다시 몇 주 뒤, 여느 때처럼 바다에 나간 죽은 아이의 부모가 설치해둔 그물에 진주 수십 개가 올라온 뒤로, 바다가 이전처럼 돌아오기 시작했다. 물고기가 돌아오고,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 이후로 점차 발길도 끊겨갔던 항구에 사람들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이의 부모는 그것을 하나도 팔거나 가지지 않고 딸애의 무덤에 묻었다. 그와 동시에, 갑작스레 대감집 아들이 죽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아이가 달여 마신 물에 무언가 잘못된 게 있어서, 그것이 쌓이고 쌓이다 이제서야 고통스레 죽음을 맞이한 모양이었다. 한 마을에 아이의 초상이 둘이나 이루어지다니, 기이한 일이라며 마을 사람들이 다시금 쑥덕거렸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나처럼 바다에 나갔다.

 

 

죽은 아이의 친구들은 여전히 그 마을에 살았다. 하지만 성년이 될 즈음의 나이에, 검은 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먼저 부모를 따라 마을을 나갔다. 거상이 된 부모의 일을 이어받는다는 뜻에서였다. 녹안을 한 아이는 비슷한 때에 어미를 따라 수련하기 위해 전국을 돌고 오겠다고 했다. 남겨진 한 남자아이만이, 다른 모든 보통의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죽을 때까지 그 마을에 살았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인어를 다시 보는 일은 없었다. 인어 얘기를 하는 일도 없었다. 그저 열두 살의 겨울로 넘어가는 늦가을 즈음의 차가운 바다의 온도, 그것만을 기억하고, 그것에 매여 살 뿐이었다. 덕분에 언제 인어가 있었냐는 듯,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어느새 가라앉아 다음 세대의 아이들, 그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전설로나마 남아있을 뿐이었다.

 

 

호수는 어느샌가 메꾸어져 사라져 있었고.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시큼하니 짠맛으로 돌아왔다.

-Fin.

나와 영생을 살기엔, 네 존재가 내게 너무 버거워.

 

내게 묶여 영생을 산다고 믿어지는 것보다, 이대로 뭍으로 돌아가는 게 나아.

 

그건 널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만이니까.

 

내가 닿지 못하는 뭍에서 영생을 살아.

 

미안해, 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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