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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장

어느새 하리는 절벽에 다다라 있었다. 수풀 없이, 젖어 있는 절벽. 눈앞에 닥친 불은 절벽의 끄트머리까지는 닿지 않았다. 수풀이 없으니, 불이 번질 일이 없었던 것이었다. 여기서 기다리면, 사람들이 구하러 와줄 거야. 하리가 그리 생각하고선 주춤거리며, 조금 더 절벽 쪽으로 물러났다. 움찔. 발뒤꿈치로 순간 느껴진 공백감에, 하리가 주춤거리던 것을 멈추고 뒤를 보았다.

 

 

아찔한 높이였다. 저 아래 넘실거리는 바다와, 몇 군데 솟은 암초, 그리고 희게도 말간 달빛만이 하리의 뒤를 지키고 있었다. 바다에 뛰어들까 고민한 하리가 곧 고개를 저었다. 떨어지기에는 너무 높은 곳이었다. 저 아래로 떨어지면, 반드시 죽는다. 이 높이에서 바다로 떨어져도 살아남을 확률은 극악이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불이 완전히 꺼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마침 바람이 계속 불어오고 있으니, 얼마 안 되는 땅덩어리지만 잘 버티고 선다면 버티기엔 괜찮아 보였다. 떨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킨 하리가 주춤거리며 절벽의 끄트머리에 멈추어 섰다. 적어도 뒤로 넘어져 바다에 빠질 것 같지는 않은 곳.

 

 

눈앞에 불을 마주하면, 누구나 원래는 잘 알고 있던 사실을 잊는다.

 

그것이 지금의 하리에게는, 절벽이 곧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하리가 절벽의 끄트머리에 조심스레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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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소란스럽지···?'

 

 

결국 바다로 가지 않고 뭍 쪽에서 서성이던 리온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 소리를 들었다. 몇몇 사람이 울부짖는 소리와, 힘을 합쳐 무언가를 나르는 소리. 그 소리에 의아하게 눈을 굴린 리온이, 곧 수면에서 빼꼼, 머리를 들어 마을 쪽을 보았다. 정확히는, 양동이를 나르는 마을 사람들보다 더 이목을 끄는, 불타는 산을.

 

 

"···!!!"

 

 

분명, 자신이 있던 산이었다. 모든 것을 불태울 것처럼 빛나는 빛이, 리온의 푸른 눈에 박혔다. 위험했다. 아직 그 아이들이 산을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곳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당장 불이 꺼지지 않는다면, 아직 저곳에 있을지도 모르는 그 아이들이 죽을 것이 뻔했다. 약한 해일을 일으켜서, 불을 끄자. 마을의 일부가 휩쓸려가더라도, 나올 만한 사람들은 모조리 나와 물을 퍼내고 있으니 인명 피해는 없을 것이었다. 아마 그 동굴 쪽에 있을 아이들은, 절벽에 막혀 휩쓸려오지 않을 테고. 그리 생각한 리온이, 곧 호흡을 가다듬고 바다를 일으키려는 순간.

 

 

'···?'

 

 

절벽 끝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하리에, 시선이 닿았다. 아찔하게 높게 솟은 절벽과, 그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하리. 푸르게 빛나려던 눈이 도로 가라앉고, 리온의 입술이 작게 떨렸다.

 

 

'왜, 저기 있는 거야.'

 

 

저곳에 서 있으면, 해일을 일으킬 수도, 불을 끌 수도 없었다. 뭍의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리온을 중심으로 다시 서서히 원래의 빛을 띠는 바다. 하리가 위험했다. 지나치게 위험했다. 파도가 계속 쳐댔던 절벽은,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더군다나 저렇게 끄트머리에, 아무리 가벼울지라도 지속적인 압력이 내려앉으면······.

 

 

"하리야!"

 

 

인간을 사로잡는 인어의 목소리.

 

 

물이 아닌 공기로 퍼지는 목소리에, 이름의 주인이 흠칫 놀라 소리가 들린 곳을 두리번거렸다.

 

 

"들어가, 하리야!"

 

 

길게 말할 수 없었다. 더 듣다간 제게 홀려 스스로 바다에 빠질 터였다. 인어의 목소리는 인간을 유혹하고, 목소리에 홀린 인간은 인어를 따라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니까. 그리고 인어가 있는 곳은 언제나 바다였다. 인간은 바다에서 살 수 없다. 너무나 뚜렷하게 참인, 지금 이 순간, 거짓말이었으면 하는 명제. 인어의 목소리와 노래. 목소리가 인간을 유혹하는데, 노래가 인간에게 영생을 줄 수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강림의 말은 거짓이었을까.

 

그것 또한, 아니었다.

 

 

'나로는 안 돼.'

 

 

뭍의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다. 그 사람이라고 불길을 뚫고 하리를 구해낼 수 있을지, 애초에 인어와 다른 힘없는 목소리가 닿을지, 또 하리가 절벽 안쪽으로 들어간다고 살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지만······ 리온의 눈에는, 리온을 구하기 위해 파도를 내쳤던 바다의 눈에는, 그 절벽이 곧 내려앉을 것이란 사실은 명확했다. 인어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바다가 깎아내린 땅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확신된 죽음은 피해야 했다. 불길이 조금이라도 덜 번진 안쪽으로, 하리를 들여보내야 했다. 뭍으로 가기 위해 헤엄을 치려던 리온이, 곧 들려오는 목소리에 흠칫, 다시 고개를 들었다.

 

 

"리온아!"

 

 

하리의 부름이었다. 제 목소리를 듣고, 리온이 있는 곳을 돌아본 것이었다.

 

짧게만 들려준다면, 가능할 거야. 리온이 다시금 그 신비하고 요사스러운 힘이 담긴 목소리를 내었다.

 

 

"들어가, 하리야!"

 

"윽···."

 

 

틀렸어. 순간순간마다 제게 홀렸다 목소리가 끊김에 따라 유혹에서 깨는 하리가,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었다. 왜, 대체 왜. 제게는 인간을 돕는 능력 따위는 없는 것인가. 왜 하필, 인어가 인간을 탐하고, 그 삶을 부러워하고, 뭍에서의 자유로워 보이는 그 삶을 질투하다 못해 천재지변을 일으킬 능력만 가지게 된 것인가. 바다에서 무엇이든 가능한 인어가, 리온이, 저 바다와 그렇게도 가까운 뭍의 일을 해결하지 못해 절망하고 있었다. 입안의 여린 살을 깨물었더니 쇳덩이를 먹은 듯 피가 배어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절망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저 높이에서 떨어져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은, 명확하게 없다. 리온이 배어나온 피를 삼키며, 다시금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절벽이 무너지기까지는,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하리는 반드시 살려내야 했다. 다른 방법을 쓸 수 없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해일을······.'

 

"하리야! 조심해!"

 

 

강림의 목소리였다. 움찔, 하리가 목소리가 난 곳을 보았다. 어느샌가 산의 반대편으로 빙 돌아가, 가은과 현우가 있는 곳에 도착한 강림. 다리를 절뚝이는 두 친구를 구출해낸 강림이, 어떻게든 하리에게 닿기 위해 몇 번이고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강림을 보게 된 하리가, 강림의 손짓에 다시 제 앞을 바라보았다. 불에 못 이겨 다 스러져가는 커다란 나무의 줄기 여러 개가, 하리 쪽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기울어지는 무게중심.

 

 

순간적으로 흔들린 무게중심을 더이상 버티지 못할 정도로 약해진 지반이, 나무가 채 무너지기도 전에 내려앉기 시작했다.

 

 

쿠르릉······

 

 

"안 돼!"

 

 

불에 타는 나무와, 축축하게 젖어 더는 디딜 수도 없이 물러진 땅.

 

너무 물러져서, 다 바스러져가는 나무도 견뎌내지 못하는 땅.

 

끝부분부터 떨어져나가기 시작하는 돌과 땅, 나무, 풀.

 

그리고 그 사이로 떨어지는 하리.

 

 

"하리야!"

 

"꺄아아악···!!!"

 

 

새된 비명을 지른 하리가, 공허하게 넓은 허공으로 떨어졌다.

 

 

허공에서 허공으로, 다시 허공에서 바람으로, 그렇게 바람에서 바다로.

 

 

리온의 영롱한 눈동자에서, 더이상 그 눈동자가 닿지 않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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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리온의 숨이었다. 하리가 떨어지는 것을 보자마자, 하리가 있는 곳으로 헤엄쳐간 리온. 하지만 거리가 상당했기 때문이었을까. 하리의 새된 비명이 미처 다 이어지기도 전에, 하리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다에 빠졌다. 하리와 함께 떨어진 돌과 땅, 나무와 수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보잘것없이 조그만 물보라였다. 그 자그맣고, 보잘것없이 나약하지만 그렇기에 그 어떤 것보다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물보라.

 

 

이미 저 밑바닥에 닿을 듯이 가라앉는 하리를 향해, 리온이 정신없이 헤엄쳤다. 이 추운 바다에서 인간이, 이 아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숨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아니, 애초에 살아있을까. 하리가 불을 피하려다 곧 무너질 절벽에 선 것처럼, 나도 이 높이에서 떨어진 인간이 살아있을 리가 없다는 것을···

 

 

혹시 망각하고 있지는 않은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그토록 강인해보였던 이 아이가 그리 쉽게 죽을 리가 없었다. 인간에게 영물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그런 사실을 쉽게 망각할 리가 없었다. 이 아이가 죽는다기엔, 여러모로 말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리온은 수면에 떠오를 때까지 그런 생각을 했다. 오직 진실인 것은 하리가 그 높은 절벽에서 떨어졌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영물은, 인어는, 리온은. 그럴 리가 없다고. 이 아이의 죽음이 단 하나의 진실일 리가 없다고···.

 

 

"하리야!"

 

 

하리를 품에 소중하게 끌어안고 수면으로 올라온 리온이 서둘러 하리를 깨웠다. 찰박. 익숙한 물소리를 헤치고, 리온의 몸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하리는 리온의 품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정신을 잃은 걸까. 리온은 그렇게 믿었다. 죽지 않은 것이라고 믿었다. 다만 너무 높은 곳에서 떨어졌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맨살갗에 닿는 서로의 피부.

 

 

그것이, 아직 따뜻했기 때문이었다.

 

 

"정신 차려, 하리야."

 

 

떨리는 호흡을 애써 가다듬은 리온이 제 목덜미에 고개를 묻은 하리의 등을 두드렸다. 하리야. 우선 하리를 깨워야 했다. 깨우기만 한다면, 뭍에 데려다 놓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고작 몇 번의 헤엄이면, 닿을 뭍. 정신만 차려준다면 그 뭍에 닿을 때까지 살려둘 수 있었다. 아프다면, 비늘을 수십 수백 개를 뽑아서라도 입에 물려줄 수 있었다. 그런데. 어서 정신을 차려주어야 하는데, 그런데.

 

 

인어조차도, 물 위에서는 아가미가 아닌 코와 입으로 호흡하는데.

 

 

왜 이 가련하고 조그만 아이는, 제게 고개를 묻고서는···

 

 

숨 한 번을 쉬지 않는 건지······.

 

 

"하리야."

 

 

호흡할 기로가 막혔을지도 몰라. 그리 생각한 리온이, 조심스레 손으로 하리의 목을 받쳤다. 몸이 꺾이지 않도록 조심스레 하리를 받친 리온이 하리의 고개를 젖혀주었다. 고개를 젖히면, 기도가 열릴 것이다. 기도가 열리면 숨을 쉴 수 있을 거야. 물은 진즉 하리의 입에서 죄 울컥 빠져나왔다. 울컥 토해낸 물처럼, 제발 숨도 토해내라고. 제발 숨도 토해내서, 여태 그랬던 것처럼, 다시 그 코와 입으로 호흡을 계속하면 되는데. 리온이 조심스레 하리의 고개를 젖혀준 순간.

 

 

툭···

 

 

리온이 헛숨을 삼켰다.

 

눈부시도록 밝게 불타는 산보다, 달빛이 더 빛나는데.

 

그 달빛을 받은 얼굴에, 어찌 이리 핏기가 없는지.

 

왜 이렇게, 죽은 사람처럼.

 

 

꼭 죽은 사람처럼, 고개를 떨구는지···.

 

 

리온의 손받침이 애석하다는 듯, 오로지 리온의 손만 따라 힘없이 젖혀지는 고개가, 꼭 죽은 사람의 것 같아서.

 

 

"하리야···."

 

 

울컥.

 

 

정신 차려, 하리야. 여기서 죽으면 안 돼. 리온이 정신없이 중얼거렸다. 숨을 틔워주어야 하는데, 이 바다보다 더 숨이 트이는 공간이 어디 있다고. 해풍이 어느 때보다도 거센데. 여기보다 더 상쾌한 바람이 부는 곳이 어디 있다고. 리온이 다시금 하리를 당겨 품에 끌어안았다. 하리의 고개가 도로 리온의 어깨에 묻혔다. 여전히,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아니, 숨을 쉬지 못하는 듯했다. 성한 뼈가 없다는 듯이 흐트러지는 몸. 찰박거리는 물소리는, 오직 리온에 의해서만 나고 있었다.

 

 

"하리야······."

 

 

일어나······.

 

 

지금이라도 뭍으로 올라갈까. 다시 잡혀도 좋으니, 저 정신없이 불을 끄느라 사람이 절벽에서 떨어진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해볼까. 아니, 그러기엔 이미 너무 늦은 것 아닌가. 이만큼 끌어안았으면, 목소리가 닿을 법도 한데. 새근거리며 내쉬는 숨이 맨살갗에 스칠 법도 한데.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릴 법도 한데, 왜 이렇게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건지··· 죽은 생물은, 이렇게 다 고요해지는 건지.

 

 

달빛이 너무 밝은 탓이었다. 그토록 핏기 없는 볼이, 뜨일 줄 모르고 감겨 있는 눈을 비추어낸 것은 달빛이 너무 밝은 탓이었다. 이 가엾은 아이의 죽음을 너무 일찍 알게 된 것은 달빛이 너무 밝은 탓이었다. 처연하게 떨리는 리온의 입술 사이로, 더는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아이의 죽음을, 이제서야 알게 되어서. 더는 이름을 부르는 것을 포기한 것일지도 몰랐다. 주인 없는 이름을 부르는 것은 꽤나 쓸모없는 일이란 걸 알아서일지도 몰랐다.

 

 

하리야. 주인을 잃은 이름이 허공에 메아리쳤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것이 바다에 떠오른 마지막 부름이었다. 더는 주인이 없는, 갈 곳 잃은 이름. 만병통치약이라 불리는 인어의 비늘도, 죽은 사람을 살려내지는 못하는데. 영생을 준다는 노래도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인어의 목소리와 노래에 홀려 바다로 걸어들어간 인간이 더는 돌아오지 않자, 인어와 함께 영생을 누린다고 생각한 인간들 사이에 퍼진 소문이 그것이었다. 더는 돌아오지 않는 자신의 가족이, 형제가, 친구가, 죽었다고 생각하기 싫어서. 제발로 바다로 걸어들어가놓고선, 인어가 붙잡아놓느라 시체가 해안가로 밀려오지 않으니까.

 

 

저 밑바닥, 인어가 사는 곳에서 함께 살며 영생을 누리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라고······

 

진실이 아닌 동시에 진실인 소문이, 그렇게 퍼진 것이었다.

 

 

리온이 오래 전 다른 인어에게서 들은 진실이었다. 태초부터 얼마 없던 인어는, 망망대해에 홀로 사는 것이 외로워서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되었더랬다. 물에 빠지면 죽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인어가, 이미 죽은 인간을 바닷속에 붙들어놓고 놓아주지 않는 이유였다. 외로움. 그 이야기가 지금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왜 그 이야기가, 지금 다시 떠오르는 건지. 춥지도 않은데, 리온의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리온이 소중하게 하리를 품에 안았다. 더는 심장의 맥동도, 규칙적인 호흡도 들려오지 않는 몸. 그 애석한 침묵에, 리온이 고개를 떨구었다.

 

 

첨벙.

 

 

달빛이 리온의 눈끝에 영근 눈물을 비추어내고 있었다. 아무 떨림도, 맥박도 없는 몸을 무엇이 그리 소중한지 끌어안으면서, 인어가 울고 있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분명 눈에 고일 때까지만 해도 맑은 바닷물이었던 눈물이, 수면에 닿을 때쯤엔 이미 귀한 진주로 변해있는 것은. 진주 몇 개가 수면에 떨어지며 조그만 물보라를 만들어냈다. 하리가 만들어낸 물보라보다 더 작고 보잘것없었다. 서서히 바다와 비슷한 체온으로 변해가는 온기. 어느새 차갑게 식은 몸을 더없이 다정하게 끌어안으며, 리온이 문득 깨달았다.

 

 

너와 나는, 지금부터 영생을 사는 거라고.

 

너와 영생을 살라고, 그 이야기가 떠오른 모양이야.

 

아주 예전의 인어가 그랬던 것처럼, 인간을 잡고 놓아주지 말라고. 그렇게라도, 외롭게 지내지 말라고.

 

하지만.

 

 

리온이 고개를 들어 여전히 불타고 있는 산을 바라보았다. 산의 입구는 어느 정도 불길이 가라앉은 상태였다. 리온이 다시 고개를 돌려, 허망한 울음으로 이곳을 보고 있는 일행의 모습을 보았다. 가은은 이미 입을 막고 펑펑 울고 있었다. 현우와 강림은, 그저 하리의 죽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감히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떨리는 눈으로 애써 이곳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인어에게 하리를 달라고 할 수도, 그렇게 말할 목소리가 나오지도 않는다는 듯, 그저 하리의 몸처럼 축축하게 젖은 눈으로. 리온이 그 허망한 눈을 보고서 생각했다.

 

 

나와 영생을 살기엔, 네 존재가 너무······.

 

 

붉어진 눈시울로 일행을 바라보던 인어가, 곧 유유히 헤엄쳐 일행이 있던 뭍으로 다가왔다. 단 몇 번의 헤엄만에 뭍에 다다르자, 허망한 얼굴로 리온을 보고 있던 가은이 얼른 하리를 받아들었다. 이미 싸늘하게 식은 몸. 가은이 하리를 조용히 바닥에 눕히고서도, 그 체온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하리를 끌어안고 울었다. 언젠가 하리가 한 번 호수에 빠졌을 때와 비슷한 광경이었다. 곧 울음을 터트린 현우가 하리의 이름을 부르며 주저앉아 울었다. 강림은 여전히 울지 않고 있었다. 그저 그때처럼, 뭍으로 나온 하리의 왼손을 살짝, 그러쥐며.

 

 

"하리야."

 

 

리온이 그랬던 것처럼, 하리의 이름을 하염없이 몇 번이고 불렀을 뿐이었다.

 

 

내가 이곳에 있을 자격이 있을까.

 

 

뭍에 다다른 리온이 생각했다. 내가 죽인 거나 다름없는 생명. 실로는 아니었지만, 리온은 그렇게 생각했다. 본래 수십, 수백의 생명이 훼절되었어야 하는 상황에서 단 한 명만이 희생한 것을 보고, 누구는 그것을 기적이라 여길지 몰랐다. 누구는 그것을 인어의 축복이라 여길지도 몰랐고, 다른 누구는 그것을 가호라 부를지도 몰랐다. 하지만 리온에게 있어, 그런 것이 의미 있을 리가 없었다. 차라리 일행을 제외한 마을 전부를 희생시킬 것이면 몰라도, 기껏 바다로 도와주게 나온, 나를 믿은, 서로를 믿은. 그 아이를 희생시킬 생각은, 전혀 뜻에 있지 않았는데. 이 아이와 영생을 살아볼 생각은, 더더욱 없었는데···

 

 

리온이 자신의 몸에서 비늘을 하나 떼내었다. 곧 따스한 눈물을 똑똑 흘려내는 강림의 곁으로, 일행의 곁으로, 리온이 다가갔다. 하리를 끌어안고 엉엉 울던 가은과 현우가 의아한 얼굴을 했다. 곧 하리의 곁에 다시 다다른 리온이, 하리의 입을 벌려 그 안에 비늘을 넣어주었다. 경직되어가는 몸이 그 비늘을 삼킬 일은 없었으니 그저 그것으로 하리의 시신이라도 썩지 않게 하려는 셈이었다. 영험한 인어의 비늘이 든 조그만 몸이니, 적어도 수백 년은, 어쩌면 그보다 오래 이 시신이 썩지 않게 둘 수 있을지 몰랐다. 물에 젖은 머리카락이 리온의 눈을 가려서일까, 리온의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리온은 그저 상관없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이대로 두면 썩지 않을 거야."

 

 

너희가 듣지 못해도 괜찮아.

 

 

"미안해."

 

 

언젠가 떠올리게 된다면 그것으로 괜찮아. 이 저주스러운 목소리에 담긴 말을, 나중에라도 떠올릴 수 있게 된다면.

 

 

"잠깐, 리온···."

 

 

풍덩. 무슨 말을 한 거야, 라고 물으려던 가은을 뒤로하고, 인어가 곧바로 바다로 들어가버렸다.

 

 

그 뒤로는 아주 오랫동안, 죽음을 애도하는 울음만이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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