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인어에 관해서는 다양한 소문이 나돌았다.
특히 이렇게 근대의 바람이 불어오는 조선의 조그만 항구 마을에는, 그런 소문이 더 많이 돌았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와는 별개로.
인어는 상체는 인간, 하체는 물고기의 꼬리처럼 생긴 신비한 존재인데, 바다를 다스리고 관장한다 하더라. 바다에서나 뭍에서나 숨을 쉴 수 있고, 모든 바다의 생물들과 벗 삼아 지낸다더라. 인어의 눈물은 떨어지자마자 값비싼 진주가 되고, 인어의 비늘을 달여 먹으면 만병통치약이라더라. 인어의 지느러미를 먹으면 수백 년을 살 수 있고, 인어의 목소리는 사람을 유혹한다더라···.
짧은 순간, 항구에서 듣던 미심쩍은 소문들이 하리의 뇌리를 관통하고 지나갔다.
눈앞에 떠올라 저와 눈을 마주친 것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다만 소문으로나 많이 들어본 외관, 그것이 눈앞에 있었다. 고작 머리밖에 수면 위로 동동 떠오르지 않았지만, 인간의 얼굴임에도 귀가 있어야 할 곳에 물고기의 아가미 같은 것이 푸르게 돋아있었다. 인간의 살처럼 보이는 피부에는 간혹 물고기의 비늘 같은 잔해가 보였다. 전혀 조선의 것 같지 않은 창백한 피부와 영롱한 금색의 머리카락, 그리고 바다를 다스린다는 소문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바다를 깎아 담은 듯한 푸른 눈. 저 눈에 들어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바다가 경쟁을 했을까. 가장 아름답고 맑기로 소문난 바다의 한꺼풀이 한 겹씩 모여, 마침내 첩첩산중을 이룬 것처럼 그 눈의 깊이가 깊었다. 그 사람은, 그것은, 그 인어는, 수면에서 떠올라 하리와 가장 처음 눈을 마주쳤다. 그 눈에 홀린 것처럼, 인간이 아닌 수상한 겉모습에도 비명을 지를 수 없었던 하리와 인어의 눈이 찰나이지만 영겁처럼 느껴지는 시간 동안 마주쳤다. 그리고, 옆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으아아악! 귀, 귀신이다!"
극도로 긴장했는지, 물에 젖은 사람의 형태를 보자마자 비명을 지른 현우가 뒤로 넘어졌다. 뒤늦게 하리와 강림, 가은도 덩달아 놀라 헛숨을 들이키며 현우가 가리킨 호수의 정중앙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호수 밑바닥에서 나온 인어도 현우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흠칫 놀라 현우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면에서 처음 나왔을 때부터, 현우의 비명에 흠칫 놀라 몸을 살짝 물렸을 때까지 인어는 어쩐지 미미하게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이었다. 마치 제가 여태 봐왔던 풍경이 아니라는 듯 당황과 두려움을 끼얹은 표정. 어느새 정신을 차린 강림이, 허리춤에 맨 칼집에서 칼을 뽑아들어 적대적인 표정으로 인어를 노려보았다.
"인어인가. 왜 여기 있지?"
칼을 빼든 모습에 겁에 질렸던 인어의 표정이 서서히 노여운 표정으로 바뀌어갔다. 그래봤자 자신들의 또래로 보이는 앳된 얼굴. 겁에 질린 듯 보였던 어린 얼굴에 차차 노기가 서려가는 모습을 보며, 그래선 안 된다는 것을 직감한 하리가 다급하게 강림에게 외쳤다.
"강림아! 하지 마!"
"하리야!"
하리를 살짝 잡고 있던 가은이 하리를 뒤로 강하게 끌어당겼다. 완전히 뭍에 손발을 모두 딛고 뒤로 넘어진 듯한 모습이 된 하리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가은을 보았다. 난 괜찮은데 왜··· 하고 입을 열려던 찰나, 뒤늦게 이상을 감지한 하리가 도로 호수 쪽을 바라보았다.
맑고 투명했던 호수의 소금물이 파랗게 변해가고 있었다. 하늘을 그대로 담은 듯한 완연한 하늘빛. 마치 바다의 일부가 도래한 것처럼 푸르게 빛나기 시작하는 호수의 모습에, 주변의 녹색 수풀도 빛을 잃고 푸른빛을 내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호수와 같은 빛으로 빛나기 시작하는 푸른 눈을 가진 인어가 어느새 어깨의 일부까지 내놓고 일행을 노려보고 있었다. 목소리를 들려주며 축객을 내리는 대신,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려는 듯 호수를 푸르게 빛내는 모습에, 공기마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무슨 일을 저지르려는 건지. 얼어붙은 일행을 황급히 둘러본 강림이 더는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빼든 칼을 단단히 붙잡고 땅을 밟아 도약하려던 찰나.
촤아악!
인어가 있는 곳으로부터 시작된, 호수에서 나왔다고 하기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파도가 일행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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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욱, 짜···."
"괜찮아, 하리야?"
"난 괜찮아···. 넌 안 추워, 가은아? 너희는?"
"으으으, 아까보단 괜찮지만 여전히 추워!"
"어서 내려가자. 몸을 씻는 게 좋을 것 같아."
별안간 호수에서 인 큰 파도에 온통 젖은 일행은 온데간데없이 호수 속으로 들어가버린 인어를 다시 불러도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대낮의 여름이라도 해는 금방 지기 일쑤였고, 야산에 젖은 몸으로 있다간 큰일이 날 것이 뻔했으니 일행은 우선 오늘은 내려오고, 내일 다시 가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일행 중 바닷물을 가장 많이 먹은 하리가 연신 헛구역질을 하며 정강이까지 내려오는 긴 치맛자락에 묻은 풀들을 탁탁 털어냈다. 바닷물을 뒤집어썼으니 몸을 민물에 닦아내야 할 터였다. 마침 가은의 집에 목욕용 대야가 있어, 그곳으로 향한 일행은 성별대로 갈라져 몸을 씻어냈다. 가은과 친구들의 모습에 놀라 뛰어나온 가은의 어머니에겐 항구에서 놀다 빠졌다고 에둘러 변명하고, 사양하는 일행을 굳이 아랫목에 앉혀다가 보기 드문 약과를 꺼내온 가은의 어머니는 몸이 마를 때까지 있으라며 작은방을 빠져나갔다. 얼떨결에 가은의 집 작은방에 앉게 된 일행은 얼떨떨한 기분에 잠시 말이 없었다. 어버버,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는 일행에게 약과를 내밀며, 가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얘들아, 어서 먹어. 약과야."
"아, 고마워, 가은아."
먼저 따스한 차를 한 모금 들이킨 일행이 고맙다는 말을 꺼내며 약과를 하나씩 집어들었다. 맛있어보이는 갈색빛 약과는 풍미가 깊은 단맛이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약과의 맛에 일행의 표정이 한결 풀어졌다. 그렇게 말없이 약과를 오물오물 씹어삼킨 것도 잠시, 강림이 먼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얘들아."
"응?"
"호수에 도착하기 전에 수상한 기운을 느꼈었는데, 미리 말 못 해서 미안해. 귀신이 아닌 기운이라 미처 해가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어. 내 불찰···."
"에이,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래!"
남들보다 기민한 강림은 남이 다쳤을 때 그것을 미리 알아채지 못한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을 잘 아는 일행이, 고개를 찻잔으로 떨군 채 속사포로 사과를 하는 강림에게 서둘러 괜찮다며, 그를 다독였다. 그가 또 땅굴을 파기 시작한다고 판단한 일행이 하지만, 하고 더 사과하려는 강림을 뜯어말린 덕분에 강림은 다행히 무덤까지는 파지 않았다. 겨우 그를 말린 일행이 강림을 달램과 유사한 부둥부둥을 시전하고 나서야, 겨우 약과를 먹으며 그들이 궁금했던 것에 대해 말을 꺼낼 수 있었다.
"···근데 강림아, 아까 그거···."
"맞아, 인어야."
"우와, 정말?!"
"인어가 왜 거기 있을까? 인어는 바다에서 산다고 하잖아."
"나도 잘 모르겠어. 어쩌면 누군가 일부러 데려다 놓은 걸지도."
"설마 그 소문들 때문에?"
애초에 그런 비현실적인 소문을 듣기만 했지, 믿은 적은 없는 하리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소문을 믿는 사람이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인어가 존재하는 걸 눈앞에서 목격한 마당에, 마냥 그 소문이 허무맹랑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과를 오물오물 씹던 하리가 끄응, 시선을 강림에게 주며 물었다.
"강림아, 인어에 대해 아는 거 뭐 없어?"
"인어는 귀신이 아닌 영물 정도로 취급되는 존재라, 알려진 게 많지 않아. 나도 아는 거라곤 떠도는 소문 정도밖에 없어. ···실제로 기운을 느껴본 것도 처음이고."
"으음, 그래?"
"조금 더 아는 게 있다면······ 오래 산 인어의 노래는 사람에게 영생을 준다는 것 정도."
"와, 정말?"
"그럼 인어의 목소리는 사람을 유혹하는데, 노래는 영생을 준다는 거야?"
"아마도."
귀신에 대해 공부하고 귀신을 퇴치하는 강림마저 아는 게 별로 없다니, 그다지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지만 호기심은 더욱 일었다. 풍문으로는, 인어의 목소리는 사람을 유혹한다던데. 노래는 정말 사람에게 영생을 주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 일행 사이에 다시 정적이 흘렀지만 어색하지는 않았다. 그저 각자의 생각에 빠져 말을 꺼내지 않고 있던 것뿐이었다. 그중에서도 인어와 가장 오래 눈이 마주쳤던 하리는, 특히 더 깊은 상념에 빠져있었다. 이국적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외양, 간헐적으로 돋아난 푸른 비늘, 푸른 아가미, 그것보다도 더 푸르고 깊은 눈. 그리고 겁에 질려있던 표정. 정황상 어떤 인간이 인어를 그곳에 데려다 놓은 듯했다. 그닥 유쾌해보이지는 않는 표정으로, 하리가 입을 열었다.
"아까 그 인어, 겁에 질린 표정이었지?"
"그랬나?"
"난 잘 못 봤어."
"나도."
아무도 못 봤단 말이야? 조금 허탈해진 하리가 도로 생각을 이었다. 어깨까지 드러난 모습을 곰곰히 다시 떠올려보았다. 어쩐지 앙상하게 마른 모습. 그곳으로 옮겨진 뒤로 제대로 먹지 못한 듯 보였다.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는 모습이었다. 한숨을 폭 내쉰 하리가, 먹던 약과를 내려놓고 창호지 밖으로 어둑해지는 하늘을 보았다. 여름인데도 따뜻하게 데워진 방 안에서 슬슬 더위를 느끼려던 순간, 가은의 손짓에 문 한 칸이 활짝 열렸다. 저 멀리 지는 노을과 함께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이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본격적으로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육풍보다 해풍이 불어올 시간이 된 것이었다.
익숙한 바닷바람과, 노을을 삼켜가는 바다. 일행은 잠시 그것을 물끄러미 보다가, 다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인어 얘기는 물론이고, 오늘 아침에 먹은 것, 저녁에 먹을 것. 그런 실없는 일상 얘기를 앞다투어 이야기하던 일행들은, 노을이 거의 다 졌을 때즈음 몸을 일으켜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고기를 잡으러 다녀온 아버지와 동생, 집에서 그물을 수선하던 어머니가 하리를 반겼다.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이르게 잠자리에 누운 하리가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빤히 보며 낮에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겁에 질린 인어. 조금 야윈 듯 보이는 모습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하리는, 가은이 챙겨준 자신의 약과를 아껴 내일 그 인어에게 줘야겠다, 다짐하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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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날 밤.
콱.
"으아악!"
"저 미친 인어가···!"
헉, 헉. 마치 목소리가 없는 것처럼 메마른 숨만 토해내던 인어가 눈을 부릅떴다. 강제로 육지에 반쯤 올려진 인어의 모습. 물에 있어야 할 인어는, 흙바닥을 손으로 짚은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 인어에게 팔을 물린 남성이 문득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인어에 관해 알려진 게 많지 않아, 혹시 자신이 인어에게 물리고서 해를 입을까 걱정하는 것이었다. 잘도 인어에게 해를 입혀놓고, 그런 걱정을 하다니. 인어의 오른손 주변에는, 그의 팔에서 떨어져나온 비늘 몇 개와 희미한 혈흔이 있었다. 전부 그 자리에 있던 두 명의 중년 남성들이 한 짓이었다. 그날 인어를 뭍으로 데려온 남성들. 그 얼굴을 잊지 않았던 인어가, 서둘러 몸을 돌려 꼬리가 반쯤 담겨있던 호수로 돌아갔다.
"젠장, 거기 안 서?! 하찮은 요물 주제에···."
"오늘은 돌아감세. 어차피 시키는 대로 비늘 다섯 개를 다 뽑았지 않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데··· 뭐, 소문대로 약효는 있겠지. 쯧, 왜 울으란 대로 울지는 않고!"
가세, 가. 인어에게 팔을 물렸던 남성이 괜히 인어가 들어간 호수에 발길질을 했다. 애꿎은 흙이 호수에 튀는 것을 보고도 만족하지 못했는지, 남성은 몇 번을 더 씩씩거리다가 동료의 손에 이끌려 산을 내려갔다.
돌아갔구나. 호수의 가장 밑바닥에 내려앉은 인어가 겨우 안심하며 그제서야 오른팔의 상처를 살폈다. 비늘이 뜯긴 자국. 군데군데 피도 슬며시 고여있었다. 따갑게 아파오는 느낌에 인어가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 이곳에는 바다처럼 상처를 치료할 만한 산호나 조개껍데기가 없었다. 그저 좁기만 하고 시커먼 돌이 가득한, 인어를 가둔 호수. 아픔에 온 신경이 곤두선 인어에게 들리는 소리는 풀벌레 소리도, 산새 소리도 아닌 절벽에 파도가 치는 소리였다. 호수의 가장 낮은 밑바닥에 있어도, 그 소리만큼은 반드시 인어에게 들렸다. 그저 바다가 이 근처에는 있다는 사실에라도 안도할 수밖에 없는 지금. 인어가 물었던 아랫입술을 풀고 저 수면을 올려다보았다.
달빛이 비치지 않는 좁은 수면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밤만 되면 아무리 희미한 달빛이라도 비추어내던 바다가 그리워지는 때였다. 더군다나 이 호수는 주변 수풀에 가려져, 햇빛이고 달빛이고 할 것 없이 빛이 잘 들지 않았다. 달빛을 찾기 위해 애쓰던 인어가 곧 고개를 푹 숙였다. 초승달 모양으로 난 상처가 지나치게 따가워졌기 때문이었다. 상처를 살살 손으로 감싼 인어가 몸을 한껏 웅크렸다.
몸을 구기니 비로소 이 좁은 호수가 그나마 넓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마저도 인어가 꼬리를 펼치면 그만이었다. 세계의 대양을 누볐던 인어에게 이 정도는 개미굴이나 다름없었다. 숨이 절로 막혀오는 좁은 공간. 인어는 그저 절벽에 거칠게 치는 파도 소리만 들으며, 인어는 울적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고. 조금만 기다리면 바다가, 저 파도가. 절벽에 치는 파도가. 저 파도가 있는 바다에 다시···
···
···
아파······.
인어가 아예 빛이 들지 않는 호수의 가장자리로 헤엄쳐 들어갔다. 쓰라린 고통이었다. 상처도, 그리움도, 외로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