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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장

 

 

"이쪽 길이었나?"

 

"응, 맞아."

 

 

다음날 아침.

 

 

이번에는 하리가 길을 되짚어보겠다며, 일행 중 가장 선두에 서서 수풀을 헤치고 있었다. 길이 맞는지 봐 주던 현우와 문답을 이어가며, 하리는 어제보다 비교적 쉽게 호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전히 고요한 호수. 어제처럼 생명 하나 느껴지지 않는 호수였지만, 이제 그들은 이곳에 생명 한 점이 있음을 알았다. 근처에 다가갔다 또다시 물벼락을 맞을까, 일행은 어제보다 조심스러워진 발걸음으로 호수에 다가갔다. 강림은 여전히 혹시 모를 상태에 대비해 칼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있었고, 하리는 겁도 없는지 선두에 서서 수면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어제처럼 인어가 나오겠지. 그리 생각한 일행이 무작정 인어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30분이 지났고.

 

 

"곧 나오겠지?"

 

 

다시 30분이 더 지났다.

 

 

참을성이 다소 부족한 일행이 일제히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 왜 안 나오지?"

 

"바다로 돌아가버린 거 아냐?"

 

"인어는 다리가 없으니까, 그건 어렵지 않을까?"

 

"그럼 저 밑에 있나?"

 

"불러볼까?"

 

 

잠시 고민하던 끝에, 하리가 자신이 불러보겠다며 호수 근처로 다가갔다. 어제와 다를 것 없이 맑고 아름답지만 삭막한 호수. 뜸을 들인 하리가 한 손을 물에 넣어 휘저으며, 작은 물결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 물에 있다면, 물이 흔들리는 것도 느낄 수 있으리라. 잠시 뒤 손을 뺀 하리가 아주 조그맣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인어를 부르기 시작했다.

 

 

"인어야, 나와 줘. 우리 왔어."

 

 

여전히 고요한 호수.

 

 

잠시 그것을 바라본 하리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어제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 많이 놀랐을 텐데··· 사과의 의미로 먹을 걸 좀 가져왔어. 네가 많이 지쳐보였거든. 너도 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먹을 수 있다면 같이··· ···?!"

 

"?!"

 

"나, 나왔다."

 

 

어제와는 달리, 호수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작은 골 아래에서 나타난 인어. 구석에 몸을 숨기려는 듯 잔뜩 움츠린 인어가, 일행이 있는 쪽을 보고 있었다. 어제보다도 확연히 수척해진 모습. 나름 영물로 취급되는 존재가 그러한 모습이라니, 이번에는 인어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한 일행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모습에 놀란 것도 잠시, 하리가 품에서 조심스레 천주머니 속 약과를 꺼냈다. 다행이라는 듯 활짝 웃는 얼굴. 어제 일 따위, 그가 걱정되었기 때문에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듯 만면에 미소를 띄운 하리가 인어에게 약과를 내밀었다.

 

 

"사과의 의미야. 달고 맛있어서, 너도 분명 좋아할 거야."

 

"···."

 

"···부, 부담스러우면 두고 갈까?"

 

"하리야, 물러나."

 

 

여전히 경계 태세인 강림이 하리의 앞을 슬쩍 막아섰다. 어느새 인어가 어제와 같이 노여운 표정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어의 눈에, 어제처럼 다시 푸른빛이 맴돌기 시작하고 있었다. 곧 물보라가 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당황한 일행이 멈칫, 뒤로 두어 발자국 물러났지만···

 

 

"···?"

 

 

맥이 빠졌는지, 푸르게 빛나려던 인어의 눈이 잠자코 가라앉았다.

 

 

원래의 영롱한 푸른 눈과 투명한 물색으로 돌아온 인어와 호수는, 물보라는커녕 거품도 일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왜 저러지?'

 

 

하리가 어두운 표정으로 호수 가장자리에 붙어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인어를 바라보았다. 저 인어는 분명, 또다시 물보라를 일으켜 저희를 내쫓으려 했다. 하지만 힘이 없어서인지, 곧 인어와 호수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어쩐지 기력이 없어보여. 괜찮은 걸까? 그리 생각한 하리가, 몸을 더욱 웅크려 작은 그늘에 붙은 인어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마치 데려가지 말라는 듯한 몸짓. 그 몸짓에, 하리가 눈을 찌푸려 인어에게 더욱 집중해 인어를 샅샅이 훑었다. 인간의 것과 같은 듯 다른 피부. 몸을 웅크리느라 인어의 등과 오른팔이 물 위로 슬쩍 내비쳤다. 눈을 찌푸려 인어에게 집중하던 하리의 눈이 곧 동그랗게 떠졌다.

 

 

'상처?'

 

 

슬쩍 비치는 등과 오른팔에, 채찍 같은 것으로 맞은 듯한 상처가 가득했다. 피부 군데군데에 돋아 있는 물고기의 비늘 같은 것은 뜯겨나갔는지 울혈이 졌고, 잘 움직이지 못했는지 부분부분 욕창도 보였다. 푹 웅크린 채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려던 인어의 모습에, 하리가 앞을 막아선 강림의 바로 뒤까지 뛰쳐나가며 외쳤다.

 

 

"잠깐! 등에 상처가···!"

 

"하리야! 뒤로 물러서!"

 

 

인어의 눈빛이 대번에 다시 사나워졌다. 불청객을 맞이해서 그렇다기엔 꽤나 뿌리 깊은 원한인 것처럼 보이는 눈. 그것이 상처냐고 묻는 물음에, 너희가 해놓고선 왜 물어보느냔 눈이었다. 딱히 인어가 말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것이 하리에겐 자연히 읽혔다. 태생부터 남에게 깊이 공감하고 이해하는 버릇 때문이었을까. 하리가 다시 입을 열기도 전에, 일행을 사납게 노려본 인어가 퐁당,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앗, 가 버렸네···."

 

"오늘은 물 안 뿌렸네, 다행이다."

 

"너희, 봤어? 그 상처?"

 

"응, 나도 봤어. 그 상처들···."

 

"어디서 그렇게 다친 걸까? 호수 안에는 별 거 없어보이는데."

 

"자연적으로 생긴 상처는 아닌 것 같아."

 

"그렇다면 누가···."

 

 

조금 긴장했는지 느리게 말을 꺼낸 가은과 얼빠진 현우. 그중에서도 하리가 가장 시무룩한 얼굴로 일행에게 물었다. 강림의 말대로, 저런 상처는 단순 부주의로는 생길 수 없는 상처였다. 누군가 확연히 학대를 가한 모습. 시무룩해진 동시에 의심이 싹튼 하리가, 손에 쥔 약과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건 못 전해줬네. 덩그러니 손에 남겨진 약과를 바라보며, 시무룩하게 생각한 하리가 잠시 고민했다. 그런 하리의 모습을 물끄러미 본 강림이, 하리의 곁에 함께 쪼그려 앉아 하리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하리야, 오늘은 이만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상처에 대해서는 내일 다시 물어보자."

 

"하지만 그새 상처가 덧나면···."

 

"오늘은 더 있어도 나올 것 같지 않아. 정 걱정되면, 가져온 약과라도 두고 가자."

 

 

 

확실히, 더 있어도 인어는 나올 것 같지 않은 눈치였다. 다시 물속으로 퐁당 들어가버린 인어는 또다시 온데간데없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 깊은 곳에 숨을 죽이고 웅크리고 있는지, 호수에는 아주 작은 파동도 일지 않았다. 남을 한 번 걱정하면 괜찮아질 때까지 돌봐주어야 하는 버릇까지 가진 하리가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강림의 말에 어느새 약과를 올려둘 나름 깨끗한 나뭇잎까지 가져온 가은과 현우가, 함께 하리를 토닥였다.

 

 

"우리, 내일 올 때 연고도 가져올까? 나도 걱정되는 건 마찬가지니까."

 

"그래줄 수 있어, 가은아?"

 

"그럼, 물론이지."

 

"근데, 그렇게 나쁜 인어도 아닌 것 같아. 어제 우리에게 물을 뿌린 걸 보면, 그것보다 더한 짓도 할 수 있었을 텐데."

 

 

겁은 어느새 사라지고 금방 호기심이 왕성해진 현우가 나름의 추리를 이었다. 그것을 잠자코 듣고 있던 하리가, 가은과 현우가 가져온 나뭇잎 위에 약과를 올려 호수 근처에 내려놓았다. 여전히 기분이 찜찜한지 약과를 내려놓고도 한동안 그 앞에 쪼그려 앉아있었던 하리가, 호수를 향해 조용히 외쳤다.

 

 

"약과는 두고 갈게. 내일 연고 가지고 다시 올 테니까, 내일도 꼭 다시 나와줘야 해."

 

"상처를 그냥 두면 덧날 거야. 내일 가져온 연고로 치료해줄 테니까, 꼭 나와."

 

 

어느새 하리 옆에 함께 앉아 나긋하게 덧붙이는 가은의 모습에, 하리가 그나마 풀린 얼굴을 했다. 돌아가자. 내려가는 수풀을 미리 터 둔 강림이, 희미한 미소를 띄우며 일행을 인도했다. 마지막까지 호수를 힐끔 돌아본 하리가, 일행의 부름에 이끌려 산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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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고요해진 호수 주변. 간헐적으로 새가 지저귀고, 다람쥐가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려왔다. 호수까지는 잘 닿지 않는 해가 저물고, 마침내 완전한 암흑이 도래했을 때.

 

 

퐁······.

 

 

그제서야 호수 속 인어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은 오지 않는 건가.'

 

 

경계하는 눈으로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는 주변을 훑은 인어가, 일행들이 왔었던 호수 가장자리로 조용히 올라갔다. 오늘 밤에는 그 중년의 남성들이 오지 않을 모양이었다. 인어가 어제도, 오늘도 왔었던 일행의 모습을 반추했다. 어린 모습이었지. 인어가 물에 젖은 머리를 털며 그리 생각했다. 퐁, 하는 작은 파동을 일으키며, 물결을 헤치고 올라온 인어가 일행이 두고 간 약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람쥐가 갉아먹은 자국이 있는 걸 보니, 독 같은 건 타지 않은 듯했다. 물끄러미 그것을 보던 인어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었다. 늦여름에 잘도 상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던 약과.

 

 

'먹어도 될까.'

 

 

인어가 어젯밤의 일을 회상했다. 인어의 눈에서 눈물을 떨어뜨리기 위해 때리고 굶기고, 별 짓을 다한 중년의 남성들. 그런 남성들이 제게 왔었다. ···그 남자들과 그 아이들은 아무래도 다른 부류겠지. 그 아이들은 이곳에 오는 것도 어제가 처음인 듯 시끄럽게 놀라댔으니까.

 

 

···그렇다면, 이걸 먹어도 되지 않을까.

 

 

인어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치였지만, 너무 오랫동안 굶어 더이상 가릴 게 없는 처지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떨리는 손으로, 인어가 약과를 한 입 베어물었다.

 

 

'맛있다.'

 

 

야금야금 약과를 물어뜯으며, 인어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참 굶은 뒤 먹는 것이라 그런지, 단맛이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그 남자들은 인어가 뭘 먹는지 몰라 마른 조개 껍데기, 해조류 같은 걸 가져와 인어 앞에 내밀었었다. 물론 해조류를 먹기는 했지만, 인어는 굶어 죽을 기세로 그것을 먹지 않았다. 한 입이라도 베어먹은 자국을 만들었다간, 인어가 그런 것들을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된 그 남자들이 해조류를 갖다 바치며 자신을 바다로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인어가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인어가 서둘러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냠냠, 약과를 한 입씩 먹으며 생각했다. 금발의 머리카락이 물에 흐트러지며 황금빛 파란을 만들어내고, 푸른 눈이 정확히 물색과 같은 모습을 보고 그 누가 인어에게 신성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약과를 아껴 뜯으며, 인어는 그가 살던 바다에 비하면 좁디좁은 호수의 구석에 웅크렸다.

 

 

약과를 먹고 있자니 고작 비늘 한 조각을 온전히 못 떼어내서, 고작 진주 하나 얻겠다고 자신을 못 울려서 아쉬운 눈치였던 그들이 떠올랐다. 치가 떨렸다. 인어가 바늘이 다섯 개쯤 뽑혔던 오른팔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군데군데 돋아나 있었던 비늘이 뽑힌 자국이 여실했다. 인어라고 해서 인간과 피의 색까지 다른 것은 아니었으므로, 푸른 호수 속 이질감이 드는 붉은 상처는 그리 좋은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그 상처를 치료할 재료가 이곳에는 없으니, 인어는 상처가 나을 때까지 그것을 꼼짝없이 가만 두어야 할 것이었다. 가만히 한숨을 내쉰 인어가 차가운 돌에 머리를 기댔다.

 

 

본디 인어의 비늘은 부서지지 않은 온전한 형태여야 약효가 있다. 하지만 인어의 비늘은 뽑히자마자 아주 부서지기 쉽게 산화되어버려서, 인어가 뽑아주지 않는 한 온전한 형태로 뽑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리 날뛰는 인어에게서 비늘을 뽑아내려고 하니, 그 남자들이 비늘을 제대로 뽑지 못하거나 뽑아낸 비늘을 유리처럼 부수는 것은 당연한 논리였다. 그런데 그것이 약효가 없다는 줄도 모르고 좋다고 부서진 비늘을 가져갔으니. 어쨌든 한동안은 그 비늘을 달이느라 오지 않을 거라고, 인어가 생각했다.

 

 

'조금만··· 조금만 기다리자. 조금만 기다리면······.'

 

 

인어는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 야금야금 아껴 먹었던 약과가 어느새 동이 나고 있었다. ···하나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인어가 조금 아쉬운 얼굴을 하며 생각했지만, 그럭저럭 배는 채웠으니 괜찮았다. 이걸로 적어도 한 달은 더 버틸 수 있으리라. 그때까지 인간에게 그 무엇도 내어주지 않겠다고, 인어는 굳은 표정으로 다짐하며 그물에 걸린 저를 끌고 가도록 명령한 남자를 떠올렸다. 그 남자가 제게서 비늘과 진주를 뽑아내라고 명령한 거겠지. 어림도 없었다. 그런 탐욕스러운 자에게는 살 한 점, 비늘 한 조각도 내어줄 수 없었다. 한 번 내어주기 시작하면 끝을 모르고 착취하는 모습을, 인어는 이미 많이 봐왔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저 뭍 위를 정복한 것도 모자라, 이제 바닷속을 넘보고 있는 그 모습을.

 

 

인간이 바다의 밑바닥을 궁금해한다. 바다가 내주는 것이 모자라 바다 저 밑에 무엇이 있을지, 쓸 만한 것이 있을지 궁금해한다. 인어는 그것이 두려워 저 깊은 바다 한가운데서 도망쳐온 것이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변방의 육지와 가까운 곳에 도달해, 실수로 그물에 걸린 것이었고. 어느새 약과를 다 먹어버려 텅 빈 손이 보였다. 인어가 몸을 천천히 웅크렸다. 그때 그물에 걸려선 안 됐는데. 바다로 돌아가고 싶었다. 인어를 어떻게든 살리겠다고 바닷물을 산까지 끌어와 호수를 만들고, 먹을지 말지 알 수 없는 것까지 가져다 주는 꼴이 역겨웠다. ···어차피 조금만 기다리면, 바다가 올 거야. 인어는 밀려오는 구토감을 애써 달래며, 언젠가 이곳에 도달할 바다를 생각했다. 인어는 바다를 다스린다기보다는, 바다의 물꼬를 트는 존재였으니까. 인어가 있는 곳에 바다의 흐름이 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인간이 혐오스러워짐에 따라 바닷물에 스친 상처가 쓰라려왔다. 오늘은 그 남자들이 올 것 같지 않으니, 잠시 눈을 붙이자. 인어는 그리 택하고 눈을 살짝 감았다. 며칠을 신경을 곤두세운 건지. 눈을 감자마자 졸음이 몰려왔다. 곧 잠들기 직전, 증오하던 인간을 생각하던 인어가 어슴푸레 사라지는 물거품처럼 또다른 인간을 떠올렸다. 어제도, 오늘도 왔었던 그 어린아이들. 약과에 독 같은 걸 타지 않은 그 아이들.

 

 

내일 그 아이들이 다시 오기로 했는데.

 

··· 부탁하면 나를 바다로 돌려보내줄까.

 

믿어도 될까.

 

모르겠다.

 

 

인어가 눈을 사르륵 감았다.

 

수면에 물거품이 몽글하게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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