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그로부터 또다시 일주일이 지났고.
다시, 일주일이 지났으며.
마침내 한 달 반 정도가 더 지났다.
일행이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듯, 일행과 인어는 꽤 가까워졌다. 특히 하리가 그랬다. 처음에는 인어의 의도를 잘 파악하지 못했던 하리가, 인어의 의사를 누구보다 빨리 알아듣기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일행 근처로 잘 다가가지 않던 인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행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와 이제는 일행의 곁에서 함께 이야기를 들을 정도가 되었다.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인어는 잠자코 이야기를 듣기만 해야 했지만, 일행이 말을 걸어주는 덕에 간단한 의사소통을 하며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의사소통 중에는 일행의 물음도 있었다. 바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여긴 왜 다친 거야, 누가 다치게 한 거야, 같은 물음. 인어는 일행이 그렇게 물어올 때마다 그저 일행의 눈을 빤히 들여다볼 뿐, 고개를 끄덕이지도 휘젓지도 않았다. 호박엿이 더 좋냐 약과가 더 좋냐라는 질문에는 약과가 더 좋다고 잘 대답했으면서. 그보다 대답하기 쉬운 질문에는 전혀 답하지 않는 인어가 야속했지만 일행은 보채지 않았다. 누군가 억지로 데려왔지만, 갈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거겠지, 어련히 짐작할 뿐, 인어의 진짜 의도는 알지 못했다.
인어의 팔에 있던 상처도 눈에 띄게 빨리 나아졌다. 인어의 재생력은 인간보다 뛰어나다는 강림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닌 듯했다. 하지만 일행은, 이제 팔이 아닌 꼬리에 상처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인어의 비늘을 달인 물에 왜 약효가 없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남자들이, 인어의 다른 부위에서 비늘을 뽑아보기로 택한 것이었다. 꼬리를 물 밖으로 낼 일이 없으니 일행은 이 사실을 몰랐고, 연고 단지에서 연고가 줄지 않아 이제 상처가 생기지 않는 줄 알고 있었다. 그것이 그저 인어가, 일행을 걱정시키고 싶지는 않아서 연고를 쓰지 않은 것임을, 일행은 여전히 몰랐다.
그리고, 보름이 뜬 날 밤.
인어의 꼬리를 발로 툭툭 밀어 도로 물에 빠트린 남자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아무래도 효과가 없는 것 같지?"
"없는 것 같아. 비늘이라고 이 비늘, 저 비늘 뭐 다를 게 있나? 그 노친네는 그걸 못 믿고 다른 데서 비늘을 뽑아보라고···."
"쉿, 누가 듣겠군."
"이 야산에 누가 온다고 그래?"
그 양반 아들도 참 딱하게 됐지. 죽을병에 걸려선 이도저도 못하고···. 두 남자가 속닥거리며 산을 내려갔다. 여느 때처럼 혈흔은 흙에 덮어 보이지 않도록 가린 후였다. 오늘도 그들은 멀쩡한 비늘을 한 점도 줍지 못하고 돌아갔다. 발에 채여 물속으로 들어간 인어의 아가미가 활짝 열렸다. 물에서 호흡하기 위해서였다. 점점 혼탁해져가는 고인 바닷물. 주기적으로 물을 퍼다 날라준다고는 하지만, 고여있는 물이 언제까지고 맑을 수는 없었다. 설사 인어가 있는 바닷물이라도. 그나마 인어가 있었기에, 진즉 썩어 없어져야 했을 물이 이 정도로 맑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었다.
호수의 구석으로 가라앉듯 헤엄친 인어가, 뻐근하게 시려오는 꼬리를 감싸면서 또다시 생각했다. 우울해져 견딜 수 없을 때마다 늘 하는 생각이었다. 기다리자고. 바다가 올 때까지, 바다에 갈 수 있을 때까지.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어. 인간이든, 인어에게든 시간은 상대적인 동시에 절대적이었다. 빠른 듯 느리게 느껴지는 시간은 지금의 인어를 외롭고 춥게 만들었고, 느린 듯 빠르게 흐르는 시간은 언제나 인간을 노화로 이끌었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온기를 나누어주었기 때문이었을까. 인어는 오늘은 조금 덜 외롭고, 춥게 느껴졌다. 하지만 받은 온기가 거짓말이 아니라는 듯, 그 온기를 타고 새로운 생각이 싹텄다.
조금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정확히는, 일행들에게, 그 아이들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이후로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계속 기다리기만 한다면······.'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대로 기다리기만 해도 저는 바다로 돌아갈 수 있을 터였다.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그는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그래선, 그 남자들은 물론이고, 그 아이들까지 죽게 될 것이었다.
인어가 지금까지 해왔던 상념과는 다른 고뇌에 빠졌다. 그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제가 배고플까 매일같이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상처를 걱정해주고, 연고를 가져다주는 그 아이들을. 아무리 인간이라지만, 제게 해를 입힌 인간이라지만, 그런 인간만 있는 것은 아님을 알려준 그 아이들을. 바다의 것과 정확히 같은 제 체온에 온기를 알려준 그 아이들을, 나는.
적어도,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겠다고······.
인어가 다른 상념에 빠져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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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다시 2주가 더 지나서, 이제 완연한 가을이었다. 호수와 바다의 수온이 떨어지고, 산의 이파리에는 서리가 끼는 가을. 마을 사람들은 장마가 늦은 만큼 서리가 빠르다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했다. 그에 따라 일행의 옷도 점차 솜을 넣은 두꺼운 옷으로 바뀌어갔고, 일행은 여름보다 움직이기 둔해졌음에도 잘도 산을 올라 오늘도 인어가 사는 호수에 다다랐다. 사람들이 발견할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길을 몇 번 달리해서 호수에 갔지만, 두 달을 넘게 다니다 보니 희미하게 길이 트였다. 한결 호수에 가기는 편해졌지만, 사람들이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걱정을 하며, 하리는 호수에 다다르자마자 가장 먼저 앞으로 튀어나가 인어를 불렀다.
"인어야!"
퐁!
일행의 소리가 들리자마자 호수에서 인어가 퐁, 하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 모습에 현우와 가은도 쫑쫑 걸어나와 인어를 맞이했고, 강림은 여전히 인어와 사이가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나름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모양이었다. 여느 때처럼 일행은 호수 바로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고, 인어는 호수 근처에 팔과 머리를 기대고 일행의 이야기를 즐겁게 들었다. 이제는 일행의 손길도 어느 정도 허용한 상태였다. 가은이 물이 똑똑 떨어지는 앞머리를 옆으로 치워주는 것을 아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여느 때처럼 재잘재잘 떠들던 일행 중 하리가, 문득 인어를 돌아보았다. 연한 미소를 띄운 채 일행이 하는 이야기를 듣던 인어가, 하리의 시선에 눈을 올려 하리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하리가 아쉬운 얼굴을 하고선 손을 들어 인어의 젖은 머리를 살살 쓰담었다. 그 느낌이 기분 좋다는 듯, 인어가 눈을 접어 웃으며 하리의 손에 머리를 부볐다.
"너도 목소리가 있어서, 우리랑 얘기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깜빡.
"네 얘기가 궁금한걸."
하리의 말을 끝으로, 일행이 동의하는 말을 건넸다. 나도. 바닷속 생활은 어땠을지 궁금해. 이런 것도 알려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따위의 이야기를 나누는 일행을, 인어가 시선으로 훑었다.
'지금··· 얘기할까?'
물끄러미 올려다보자, 하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인어를 내려다보았다. 무슨 일 있냐는 표정. 어떡하면 좋을까. 인어가 지난 2주간 고민한 결과, 가장 최선의 방법은 일행에게 곧 있을 일들을 이야기해주고, 자신을 바다로 돌려보내도록 부탁하는 방법뿐이었다. 그 외의 방법은 거의 없을 뿐더러, 있더라도 실현시키기에는 비현실적이었다. 마침 오늘쯤 말해주면, 방법을 생각해내는 데에 2주 정도 더 걸린다고 하면······ 시기가 딱 맞아떨어졌다. 바다가 오기까지 고작 3주가 조금 안 되게 남았으니.
그럼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는데.
하지만 먼저 이야기를 하려면, 목소리를 들려주려면···
하리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인어의 시선에 의아함을 느낀 일행이 곧 재잘거리던 것을 멈추고 인어를 바라보았다. 깜빡. 여느 때처럼 영롱하고 투명하기 그지없는 눈망울에 일행의 모습이 맑게 비쳤다. 무슨 일이냐는 듯, 인어를 바라보는 시선.
'···괜찮지 않을까.'
불쑥 떠오른 뜻모를 믿음.
그 시선에, 인어가 곧 손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톡톡.
"응?"
인어가 손을 들어 하리의 귀를 톡톡,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손이 아닌 차가운 물이 닿는 느낌에, 하리가 의아한 눈으로 인어를 내려다보았다. 무슨 뜻이지? 인어에게 설명을 요구할 수 없었으니 일행이 각자의 머리를 굴려 뜻을 유추해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인어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던 하리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인어에게 물었다.
"들려주겠다는 뜻이야?"
끄덕.
"설마 목소리를?"
끄덕.
"뭐? 정말?"
목소리를 낼 줄 알아? 놀란 일행의 눈이 커졌다. 강림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 인어는 목소리를 얻을 만큼 오래 살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외관은 저희와 다를 바가 없어보이는데, 영물에게 시간은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인어의 목소리가 사람을 유혹한다는 풍문이 있기 때문이었을까. 강림이 어느새 조금 긴장한 얼굴을 했지만, 인어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그저 강림을 한 번 흘끔 바라볼 뿐이었다. 다시 하리에게로 시선을 돌린 인어가, 다시 하리의 귀를 톡톡 건드렸다.
"듣고 싶냐는 뜻이야?"
끄덕.
"당연하지! 네 목소리 궁금한걸?"
정말?
인어는 그리 묻는 얼굴로 일행에게서 조금 멀어지게 헤엄쳤다. 어쩐지 의미심장한 무표정한 얼굴. 거리를 재는 건지, 눈으로 호수의 가장자리와 일행을 훑던 인어가 일행이 잠시 서로 이야기를 나눌 동안 다시 일행의 곁으로 돌아왔다. 평소와 다름없지만 어쩐지 단단한 구석이 있는 눈으로, 인어가 일행을 훑었다. 그러고선, 입을 열어 말했다.
정확히는,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입만 뻐끔거렸다.
'날 믿어?'
"···!"
인어의 첫 물음. 간단하고 짧은 물음이었기에, 그것을 못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놀란 다른 일행들이 미처 되묻기도 전에, 하리가 놀라던 것도 잠시,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믿지!"
'···.'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쉽게 나와버린 대답.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온 대답에, 인어가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떴다.
"나도 믿어!"
"나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하리의 대답에 질세라, 현우와 가은, 강림도 차례로 답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눈을 꿈뻑이던 인어가 일행을 한 번 훑었다. 앗. 혹시 목소리를 들려주기 싫은 건가, 생각한 하리가 무언가 결심한 얼굴로 돌아온 인어에게 급히 말했다.
미안하다는 듯 웃는 얼굴.
그 얼굴을 물끄러미 보던 인어가···
"네가 들려주기 싫다면 안 들려줘도 돼! 아니, 그냥 신경쓰지 않아도..."
텁.
'나도.'
"응? 뭐라고···."
풍덩.
"꺄아악···!!!"
말을 잇던 하리의 손목을 잡아, 호수로 끌어당겼다.
갑자기 당긴 힘에, 미처 일행도 하리를 붙잡지 못한 그 짧은 시간.
하리가 작은 비명을 지르며 호수에 빠졌다.
"하리야!“
"이게 무슨···!"
우웅······.
"···!!!"
하리와 인어가 빠진 호수.
처음 만난 그날처럼 새파랗게 빛나는 호수에, 벌떡 일어선 일행이 멈칫.
들어오지 말라는 듯이 빛나는 호수는, 하리를 구하기 위해 물에 들어가려는 일행을 거부했다.
가장 먼저 물에 뛰어들려던 강림이 아랫입술을 꽉 물고선 외쳤다.
"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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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물 속.
'숨 막혀!'
본능적으로 숨을 삼키기 위해 입을 벌린 하리가 도로 입을 다물었다. 입안으로 들어오는 바닷물이 지나치게 짜고 차가웠기 때문이었다. 한가을 조그만 호수임에도 온몸이 얼어붙는 낮은 수온. 분명 호수에 빠진 것은 저와 인어였는데, 인어는 온데간데없이 저 혼자뿐이었다.
'살려줘···!'
준비도 없이 빠지느라 숨은 벌써부터 막혀왔다. 위로 올라가기 위해 헤엄을 쳤지만, 아래에서 무언가 끌어당기는 것처럼 몸은 계속해서 가라앉을 뿐이었다.
허우적.
'왜 아무것도···.'
아무리 팔다리를 발버둥쳐도, 손발에 잡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 정도 가라앉았으면 호수의 밑바닥이 나올 법도 한데, 벽이 닿을 법도 한데.
끝을 모르고 몸을 침잠시키는 이곳은···
꼭 호수가 아닌 바다 같았다.
'뭐, 뭐지?'
아무것도 잡을 수도, 딛을 수도 없는 하리에게 무언가 다가오고 있었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는 하리가, 본능적으로 그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손길에, 다가오던 무언가 역시 손을 뻗어 하리의 허리를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하리가 더 깊은 심해의 수류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자연스레 무언가의 어깨에 손을 올리게 된 하리의 눈이 순간 번쩍, 뜨였다.
앞이 뿌얘서, 숨이 막혀와서.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인어였다. 저를 이곳에 빠트린,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아름다운 인어. 저와 언뜻 나이는 비슷해보이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살았을지 알 수 없는 인어. 물고기의 꼬리를 가진 하반신까지 합하면 웬만한 성인 남성의 키보다 큰 인어.
"안녕."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누구도 들을 수 없었던 목소리를 들려주는 인어.
"미안해, 놀랐지."
물속인데도 아주 편안한 듯이 말을 잇는 모습.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 와닿는 순간이자, 왜 인어의 노래는 사람을 유혹한다는 소문이 도는지 알 것 같은 순간이었다. 어떤 사람도, 사람이 아닌 것도 꾀어낼 수 있을 것 같은 미성. 그 미성이, 파란과 물거품을 타고서 고스란히 하리의 귀로 전해져오고 있었다.
"뭍에서 내 목소리를 들으면, 내게 홀리게 돼."
"그럼 물에 빠져 죽고 말아."
바닷물이 너무 짜서일까.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저 희미하게 웃고 있는 듯한 인어의 입모습만 조금 보일 뿐이었다.
"그래서 널 물속으로 끌어들였어. 이미 물에 빠지고 나면 더이상 유혹되진 않거든."
"날 믿는다고 했지. 그럼, 잠깐 내 얘기를 들어줘."
숨도 잊고서 그 목소리에 집중했기 때문일까. 잠시 말을 멈춘 인어가 다시 숨을 머금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녕, 난 리온이야.“
"네 첫 번째 질문에 이제 답해서 미안해."
이름을 물었던 것을 기억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하리에게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안 그래도 부족했던 숨이 정말 밑바닥을 보이며, 하리의 의식이 점차 꺼져가기 시작했다. 그런 하리의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인어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순간 인어의 어깨를 강하게 끌어당긴 하리가 입모양으로 뻐끔거렸다. 살려줘. 조금 놀란 듯, 인어가, 리온이, 눈을 크게 뜨더니 곧 자신을 끌어당긴 하리의 한 손을 어렴풋이 감쌌다. 걱정 말라는 듯, 말을 잇는 인어. 하리는 당장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메마름을 느꼈음에도, 어쩐지 그 태도가 자신을 살려줄 것만 같아서. 이렇게 물이 많은 곳에서 느껴지는 숨 막히는 갈증이 기꺼워서. 인어와 자신이, 절대 다른 마음으로 서로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 느껴저서.
하리는 점차 꺼져가는 의식을 스르륵, 놓으며 인어의 목소리를 들었다.
"네게 부탁할 일이 있어."
"다짜고짜 빠트려서 한다는 말이 이거네, 정말 미안해."
"하지만··· 이제 정말 시간이 없어. 원래는 기다릴 참이었는데······."
무엇을?
"너희를 믿는 바람에."
우리를 믿어? 하리가 질문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다시 다물어지지 않았다.
잘 들어, 하리야.
점차 꺼져가는 의식 사이로, 메아리로 들리기 시작하는 목소리. 하리의 눈이 가물하게 감기기 시작했다.
그 짧고 숨 막히는 찰나.
···를 바다로 돌려······해.
그렇······을···일이···불어닥칠······.
뭐라고? 하리의 눈이 감기기 직전.
비로소 인어의 울 듯한 애틋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점차 뿌옇게만 들렸던 인어의 목소리가 제대로 귀에 박혔다.
인어는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를 바다로 돌려보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마을에 해일이 불어닥칠 거야······.
하리가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